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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같은 한국 근·현대사를 보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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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앤드루 새먼
영국 더타임스 서울특파원

영국 역사소설가 조지 맥도널드 프레이저는 미국 서부의 역사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50년 내에 미국 서부지대가 황야에서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바뀌었다고 묘사하는 것은 진부하다. 그보다는 골드러시 당시 역마차를 타고 평원을 가로질러 서부로 갔던 한 아이가 이제 손자와 함께 TV에서 골드러시에 관한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고 얘기하는 것이 더 실감나지 않는가?”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역사는 어떨까. “1900년대 초 서울에서 유년기를 보낸 한 아이는 조선의 마지막 왕이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 서울거리를 행차하는 모습을 보며 절을 했다. 청년이 되어 그는 같은 자리에서 일본 식민지배에 저항해 시위를 벌였다. 중년이 되어서는 그 자리에서 미 해병대와 북한군이 시가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며 가족과 함께 공포에 떨었다. 노년이 된 후에는 같은 거리에서 그의 손자가 권위주의 정부에 대항해 시위를 벌이는 장면을 TV 뉴스를 통해 지켜봤다. 말년에 그는 증손자와 함께 바로 그 거리에 세워진 박물관을 방문해 그가 겪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노인의 생애를 가상한 이 이야기는 그 자체가 격변의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다름 아니다. 왕조 몰락에서 일제 침략, 전쟁과 분단,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근대화의 역경을 보여주는 억압의 역사다. 반면 민주화를 위한 투쟁과 산업화의 과정은 현대의 대한민국을 이뤄낸 성공의 역사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대한민국 발전의 중요한 원동력이다.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는 서로 연속성과 계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를 바로 알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거나 설계하기 위해서도 과거의 역사를 정확히 알고 공감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많은 젊은이는 어제의 역사를 되살려 미래와의 연관성을 찾기보다는 지루한 인물과 연대를 열심히 암송해 시험시간에 아낌없이 토해낸 후 잊어 버리고 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런 상황에서 개항기 이후의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한 곳에 담아 세대 간 공유할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내년 말 서울 광화문에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훌륭한 박물관은 인터랙티브(Interactive) 전시와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활동에 주안점을 두고 설계된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역시 세계적인 IT 기술을 접목해 보다 사실적이면서도 에듀테인먼트적인 면을 부각시켜 건축될 것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으로서 젊은이들에게 역사에 대한 흥미를 자극하고, 역사적 상상력과 교육적 정보 제공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특별한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기를 희망한다.

앤드루 새먼 영국 더타임스 서울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