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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당장 무모해도 멈출 수 없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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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송지용
프론티어연구성과지원센터장

오늘은 어제 우리가 그토록 바랐던 내일이다. 벌써 기억 저편에 머물고 있는 20세기에 우리는 밀레니엄을 꿈꾸며 오늘의 21세기를 내다보고 준비했다. 그 한쪽에는 미래 성장동력, 차세대 먹을거리, 원천기술과 같은 용어들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상기해 보자. 우리나라 전화기 문화에 혁명을 몰고 온 한국형 ‘전전자교환기(TDX)-1’이 상용화의 닻을 올린 지 어느덧 25년이 지났다. 역사에 가정은 있을 수 없지만, 만일 정부가 1980년대 초반 TDX 개발사업을 추진하지 않았다면 세계가 부러워하는 정보기술(IT) 최강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까.

 TDX 개발사업은 82년 만성적인 전화 적체 해소를 목표로 시작됐다. 5년간 240억원의 연구비를 투입하고 연인원 1300여 명의 연구원이 참여한, 그야말로 단군 이래 최대의 국가 연구개발(R&D) 프로젝트였다. 당시 대규모 공장 건설비용이 50억원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4년 뒤 세계에서 열 번째로 한국형 TDX-1이 탄생했고, 91년엔 TDX-10까지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사업을 통해 축적된 경험과 자신감은 95년 세계 최초의 부호분할다중접속(CDMA)기술 상용화와 2005년 무선 광대역 인터넷서비스(Wibro) 세계 최초 상용화의 시발점이 됐다. 우리나라를 세계 IT 최강국으로 도약시킨 원동력이다.

 새삼 TDX 성공신화를 반추하며 오늘날 정부 차원에서 추진 중인 ‘21세기 프론티어 연구개발 사업’의 성과와 과제를 생각해본다. 99년 2개 시범사업 선정을 시작으로 출발한 프론티어 사업은 미래형 첨단·원천 기술을 개발하는 대규모 장기 R&D 프로젝트다. 2013년 최종 종료될 예정이다. 처음에는 이 사업도 ‘무모한 사업’이라거나 ‘예산 낭비’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난 10여 년 동안 큰 차질 없이 묵묵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교수 및 연구원들은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동력을 찾아낸다’는 소명의식이 대단하다. ‘40나노 32기가 낸드플래시 메모리 개발’ ‘형질전환 벼 대량 육성기술’ ‘세계 최고 성능의 이산화탄소 분리막 개발’ ‘세계 최고 수준의 초전도선 제조기술’ 등은 프론티어 사업을 통해 일군 대표적인 대형 성과들이다.

 하지만 이 사업의 진정한 성패 여부는 지금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기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창출한 결과들이 ‘연구실 성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우수한 연구 성과들이 기업의 사업화 과정을 거쳐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꾸준한 지원과 연구자들의 지속적 열정, 산업계의 관심 등 삼위일체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30여 년 전 TDX 개발 프로젝트가 ‘IT강국 코리아’의 밑거름이 되었듯이, 프론티어 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우수한 기술 씨앗들이 10년, 20년 뒤 ‘과학기술 강국 코리아’로 도약하는 데 중요한 밀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이기 때문에 과학자들의 미래를 향한 도전은 여전히 아름답다.

송지용 프론티어연구성과지원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