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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재개 때 한·미가 지켜야 할 수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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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그린
CSIS 일본 실장

지난달 28일 중앙일보-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공동 개최 한·미동맹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6자회담을 재개하는 데 따른 장단점을 논의했다. 모든 토론자들이 북한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었지만, 언제 어떤 여건하에서 북한과 대화를 재개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지적한 사람은 없었다.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해낸 몇 가지 원칙들을 소개한다.

 우선 우다웨이(武大偉·무대위)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최근 제안한 6자회담 3단계 개최 방안을 검토해보자. 이 제안은 새로운 것으로 볼 수 없다. 사실 이 방안은 한국 정부가 상당 기간 주장해왔다. 또 이 제안은 회담의 목적이나 내용상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최근 중국 정부가 그래왔듯이 단순히 대화 프로세스만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진정성을 보이고 천안함·연평도와 같은 도발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믿을 수 있도록 하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한국의 입장에 중국이 동의했다면 훨씬 더 유용했을 것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한·미 정부가 6자회담 재개를 위해 현재 이상으로 기대를 갖거나 위험을 감수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두 차례의 핵실험과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포격,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과시, 2012년 핵강국 진입 선언 등을 감안할 때 김정일 체제가 6자회담을 통해 비핵화에 동의할 것으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협정에 서명할 것인가. 물론 할 것이다. 북한은 과거에도 서명한 적이 있다. 그러나 양보를 얻어내는 동시에 핵개발을 지속하기 위한 속임수였다. 따라서 협정 서명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북한이 UEP 현장 사찰을 허용할 것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원조와 제재 해제 없이는 응하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계산된 방식의 사찰만 허용할 것이다. 한마디로 6자회담으로 북한 핵문제에 돌파구가 열리는 일은 현시점에서 생각하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 역시 6자회담을 통해 검증 가능한 비핵화 없이 대북제재를 해제하고 북·미관계 정상화에 나섬으로써 안보를 약화시키는 바보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6자회담 재개에 따른 장단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우선 장점. 북한의 의도와 내부 역학에 대해 유용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 (가능성은 낮지만) 북한에 급변사태가 벌어져 북한 정권이 보다 유연해지는 경우에 대비해 대화의 끈을 놓지 않는다; (대화를 지속하면 북한이 긴장을 고조시키지는 않을 것이란 보장은 없지만) 도발의 강도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북한에 변화가 생길 것을 기대하면서 관련국들 사이에 신뢰를 쌓는 것이 가능하다; 북한의 핵보유를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단점은 다음과 같다. 북한이 기존 합의들을 어겼다는 점을 묵인함으로써 북한에 보상을 할 위험성이 있다; 중국으로 하여금 회담 결과보다 회담 자체에 집중토록 함으로써 대북 압박을 약화시킬 수 있다; 평화협상을 서두르거나 ‘평화공존 외교’를 강조할 경우 북한의 핵보유를 용인한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 북한 인권상황이나 북한의 핵확산 활동에 대한 주의력이 약화될 수 있다.

 그렇다면 6자회담 재개에 따른 이점을 극대화하고 위험 부담을 줄이는 방법은 무엇인가. 다음 다섯 가지의 간단한 지침이 도움이 될 것이다. 회담 복귀를 고민하는 외교관들에게는 의사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같은 것이다.

 1.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일을 피하라.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는 데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2. 북한의 대내·대외 핵확산 활동을 억제하고 차단하기 위한, 그리고 북한의 불안정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방어적 수단들을 약화시키는 조치를 피하라(북한을 회담에 복귀시키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를 실행하지 않은 미국의 2007년 결정은 실수였다).

 3. 북한이 검증 가능한 비핵화 조치를 취하기 전에 제재 해제나 중유 제공과 같은 물질적 혜택을 제공하지 말라.

 4.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성명을 위반해 북한이 취한 조치를 되돌리기 위해 어떤 혜택도 제공하지 말라(북한이 긴장 고조를 통해 이전의 약속을 깨거나 새로운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고 오판할 수 있다).

 5. 미국 또는 다른 나라들이 핵을 보유한 북한과 평화 공존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말라(검증 가능한 비핵화 없이 평화협상에 나서지 말라).

마이클 그린 CSIS 일본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