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가구도 인터넷에 맞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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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맞춘 인터넷 가구가 등장했다. 디자인은 더욱 단순화됐고, 색상은 하얀색이 주류며, 기능성이 더욱 강조됐다. 71년 전통의 독일 쾰른 가구박람회(17~23일). 세계 최고의 박람회답게 새 천년의 가구 디자인 컨셉트가 총망라됐다.

[쾰른(독일)〓고윤희 기자]이탈리아 가구업체인 MDF사는 '단순함이 모든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철학' 이란 슬로건 아래 컴퓨터 사용이 편리하도록 의자와 책상이 결합된 제품과 유리로 만든 컴퓨터용 서랍장을 선보였다.

붙박이장과 침대가 결합하고 부엌가구 안에는 컴퓨터가 들어 있다. 여닫이 기능은 손잡이가 필요없이 누르거나 만지면 해결되도록 설계됐다. 디자인에 첨단기술이 가미된 것.

달팽이 모양의 의자는 조각품을 옮겨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같은 '아방가르드(전위적) 제품' 은 가구 디자이너들이 독자적으로 출품한 것이다.

이번 박람회도 어김없이 독일과 이탈리아 업체의 각축장이었다. 1천5백여 출품업체 가운데 40%가 두 나라 회사다.

일본과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에서 80여 업체가 참여했지만 부스 크기나 제품에서 이들과 견주기엔 아직 힘이 달렸다.

국내에선 대형 가구업체는 없고, 성암스톤밸리와 도도가구 등 중소업체 두곳이 사상 처음으로 참여했다.

박람회 현장을 둘러본 한샘의 최양하 사장은 "2000년 가구디자인의 집결장인데 한국산 제품이 따로 박람회에 전시조차 안되는 현실이 부끄럽다" 고 말했다.

◇ 왜 독일.이탈리아가 강한가〓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독일.이탈리아는 재건과정에서 시스템가구의 생산이 시급했다. 가구를 빨리 만들기 위해 부품의 표준화와 손쉽게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가구가 필요했다.

이에 따라 대량생산형 표준가구를 만들기 위한 목공기계가 발달했고 소재개발도 눈부셨다. 목재에서 중밀도 섬유(MDF).유리.철제.플라스틱.알루미늄으로 발달된 가공소재는 디자인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도록 한 기반이 됐다.

이에 따라 독일은 기능성을 강조한 하드웨어 개발 분야를 주도했고, 이탈리아는 디자인을 무기로 세계 가구의 양대 산맥을 이뤘다.

독일의 인터룹케와 이탈리아의 B&B이탈리아는 그래서 유럽에선 자동차업체에 비견될 만큼 대접받는 업체로 성장했다.

이탈리아 가구협회 주세테 그레고리(55)수출담당 임원은 "이탈리아는 디자인과 생산기술이 모두 강하다" 며 "디자인이나 생산분야를 전문분야별로 쪼개 역할을 분담한다" 고 분업체계를 강조했다.

이탈리아에서 일류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영국 출신 제스퍼 모리슨은 기능과 부품의 연관성을 강조했다.

그는 "디자이너는 제품생산의 전 과정을 책임져야 한다" 며 "부품과 기능에 대한 이해없이 좋은 디자인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 말했다.

◇ 국내 기업은 왜 안되나〓한국이 반도체나 자동차를 곧잘 만들면서도 기초과학이 뒤떨어져 있는 것처럼 가구도 마찬가지라고 디자이너들은 지적했다. 서랍장을 열면 소음이 나는 것 자체가 자재가 조악한 결과이며, 디자인도 개발보다 모방에 급급했다는 것이다.

전시회를 둘러본 이찬(국민대.디자인학과)교수는 "유럽에선 문고리 디자인에도 일류 디자이너들이 대거 참여해 개발한다" 며 "많은 국내 대형 가구업체가 내수판매.광고판촉 경쟁에만 매달리다 쓰러진 것은 디자인 개발을 등한시한 결과" 라고 꼬집었다.

◇ 외국업체들이 몰려온다〓인터룹케.B&B이탈리아 등 세계 일류 가구업체들이 지난해부터 국내에 가구대리점망을 구축, 고급주택용 가구시장을 독차지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부엌가구 업체인 독일 지메틱사는 지난 한해 1백억원어치를 팔았다.

이에 따라 1998년 주춤했던 외국 가구제품의 수입액은 지난해 40%나 늘어난 1억6천만달러를 기록했다.

가구연합회 김영배 사업부장은 "선진업체들이 중국을 생산기지로 만들어 2조5천억원 규모의 국내 가구시장을 공략할 경우 국내 가구산업이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 며 "나전칠기와 이조목가구를 만들던 장인정신을 가진 디자이너의 발굴이 없으면 국내 가구산업은 고사할 것" 이라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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