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경찰 ‘인권’ 깃발 내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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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전남경찰청이 전국의 지방경찰청 가운데 처음으로 인권팀 (가운데 이승엽 팀장)을 꾸렸다. [프리랜서 오종찬]

4일 오전 전남지방경찰청 인권팀 사무실.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전남 21개 시·군 경찰서에서 올라온 사건사고를 꼼꼼하게 훑어보던 박경란(27) 경장의 눈에 강제 추행을 당한 40대 주부 사건이 눈에 들어왔다.

 전남경찰청 첫 피해자심리 전문요원인 그는 살인·강도·상해·방화·성폭력 등 강력사건을 모니터링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범죄의 표적이 된 피해자의 심리 치료와 병원비 부담 등의 도움을 주는 게 그의 업무다.

 박 경장은 “피해자가 새벽에 은행 현금인출기가 있는 공개된 장소에서 성폭행을 당할 뻔해 수치심이 컸다”며 “곧바로 원스톱지원센터와 연결해 의료비 등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심리학, 대학원에서 상담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피해자가 입은 마음의 상처가 곪지 않도록 상담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전남경찰청이 반(反) 인권적인 사건·사고 발생률 제로화에 도전한다. 전남경찰은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2008년 1건, 2009년과 2010년 각각 2건씩의 권고를 받았다. 인권위는 인권을 침해 당했거나 불합리한 차별로 손해를 입었을 때 구제를 권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경찰이 인권강화에 발벗고 나선 데는 자기 반성이 계기가 됐다. 2009년 전남 목포경찰서 하당지구대에서 폭행사건 피의자가 경찰이 입에 물린 수건 재갈 때문에 숨진 사건이 발생하면서 인권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올해 초 불거진 전의경 가혹행위 파문은 인권 대책을 구체화 하는 촉매제가 됐다.

 전남경찰청은 현장에서 경험하거나 목격한 인권 침해 사례를 고백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동대원들 간의 구타 사건과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신상 정보 업무와 관련해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다는 발언이 이어졌다. 이들 발표 내용은 영상물로 제작돼 교육 자료로 활용한다.

 인권업무를 총괄할 인권팀도 지방 경찰청 가운데 처음으로 만들었다. 인권 문제가 특정 부서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경찰 전반의 업무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판단에서다. 피해자심리전문요원 배치도 이 같은 취지에서 이뤄졌다. 범죄 피해자와 그의 가족은 크고 작은 고통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병원비 부담에서부터 심한 경우 직장을 잃거나 심리적 후유증을 앓는다. 하지만 경찰 수사가 가해자의 처벌에 맞춰지다 보니 피해자가 도움을 청할 곳이 많지 않다.

 경찰은 앞으로 제도적 정착에 주력할 방침이다. 인권을 주제로 한 토론회와 콘서트도 계획하고 있다. 현장에서 일하는 경찰이 변하지 않으면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인권위와 업무협약을 맺어 인권 교육을 담당할 강사의 파견도 요청할 계획이다.

이승엽 인권팀장은 “국민의식 향상에 따라 경찰도 바뀌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며 “인권관련 토론회와 역할 바꿔보기 체험극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유지호 기자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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