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공연장 전파차단을 허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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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호정 기자

어쩌면 실수고 우연이다. 음악 공연 중에 관객 휴대전화가 울리는 일 말이다.

 3일 ‘또’ 일어났다.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의 독주회가 열린 서울 예술의전당이었다. 하필 조용한 부분에서 요란한 벨소리가 울렸다. 휴대전화는 길게도 울었다.

 두달 전 같은 곳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독일의 유서깊은 악단,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공연에서였다. 브루크너의 무거운 교향곡 8번 3악장이 연주될 때였다. 방정맞은 벨소리가 지칠 줄 모르고 울려댔다.

 비난은 우선 휴대전화 주인에게로 향한다. 주위에 앉은 청중은 벨소리 ‘진원지’를 찾아내 노려봤다. “실수가 아니라 테러다” “청중의 음악감상 흐름도 끊어졌는데 연주자는 오죽했겠는가” 온라인에 올라온 두 공연의 감상문은 휴대전화 얘기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거꾸로 휴대전화 주인들 또한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일부러야 그랬을까. 열 번 끄다가 한 번 깜빡한 것은 아닐까.

 이들을 보호할 방법이 있다. 공연장 내 전파 차단기다. 휴대전화가 저절로 먹통이 되도록 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일본 도쿄 산토리홀에 들어가면 휴대전화 전파가 자동으로 차단된다.

 기술적으론 가능하지만 한국에선 불법이다. ‘누구든지 전기통신설비의 기능에 장해를 줘 전기통신의 소통을 방해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게 전기통신사업법 제79조 1항이다. 2000년대 들어 휴대전화가 공공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이 자주 일어나면서 정보통신부가 전파차단장치를 몇군데서 시험운용 했지만 2003년 최종 불허 결정을 내렸다. 통신의 자유가 앞섰기 때문이다.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은 이 시기에 전파차단기 설치를 고려하다 이내 포기해야 했다.

 최근 공연장에서 잇따라 일어난 ‘사건’이 다시 여론을 일으키고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정장선(민주당) 의원실에선 법개정안 제출을 준비하며 외국 사례를 수집 중이다. 한 피아니스트는 “공연장 전파차단은 기껏해야 30~40분이다. 청중 사전동의를 얻으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봤다.

 물론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자유와 예의 중 하나가 양보해야 한다. 하지만 음악회가 끝나면 휴대전화 얘기만 넘쳐나는 현상황은 괴상하다. 쉰살을 바라보는 안네 소피 무터의 여전한 전성기, 브루크너 교향곡의 신비한 에너지 등을 주제로 삼는 게 정상이다. 공연장 내 전파 차단을 허용해야 하는 이유다. 2000여 명 청중 모두가 잊지 않고 휴대전화를 끄는 ‘행운’을 언제까지 기다릴 것인가.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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