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가치 오르면 증시에 약 될까 독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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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묘하게 닮았다. 최근 강세를 보이는 원화가치와 코스피지수 얘기다. 원화가치는 2008년 8월 이후 제일 높은 수준이고, 코스피지수는 2200선을 넘나들며 사상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원화가치가 오르면 우리 기업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면서 기업 실적에 부담이 된다. 이 때문에 주가에는 부정적인 요인이다. 하지만 과거 사례는 반대다. 오히려 원화가치가 오를 때 증시도 상승세를 탄 경우가 많았다. 주가 상승에 따른 매매차익과 더불어 환차익까지 노리는 외국인의 매수세가 유입된 덕분이다.

 실제 2004년 10월 원화가치가 강력한 지지선이던 1140원을 돌파해 1000원까지 상승했지만, 코스피지수는 당시 850선에서 출발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대세상승기를 맞았다. 신한금융투자 최동환 연구원은 “2003년 3월 이후 원화가치와 코스피의 상관관계는 31.2%, 2009년 3월 이후로는 84.1%로 서로의 움직임이 밀접해지고 있다”며 “최근 원화 강세도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이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원화의 강세추이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의 경쟁력 개선으로 수출이 계속 늘고 있는 데다, 미국에 이어 일본도 대규모 자금을 풀고 있어 상대적으로 원화가치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외 변수의 불확실성이 완화되면서 안전자산 쏠림 현상이 줄어들고, 정부도 물가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원화 강세를 용인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 신성호 리서치본부장은 “원화가치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경제가 잘나가고 있다는 증거”라며 “제품 수출단가가 오르긴 하지만 수입물가가 낮아져 생산원가를 절감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부정적 요인이 많이 상쇄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원화가치 상승→외국인 매수세 유입→원화가치의 추가 상승’ 패턴이 반복되면서 주가와 원화가치가 당분간 강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다고 국내 증시가 마냥 원화 강세를 만끽할 수만은 없다. 원화 강세로 코스피 시가총액의 35%를 넘는 정보기술(IT)·자동차 등 대형 수출주의 가격경쟁력이 약화되면 증시의 투자 매력도 그만큼 반감되기 때문이다. 원화가치가 10원 높아질 경우 현대자동차는 연 2000억원, 삼성전자는 3000억원의 손실을 보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구재상 부회장은 “대기업은 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1000원까지 가도 감내할 수 있겠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1050원 수준이면 충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특히 중요한 것은 원화가치의 절대수치보다는 상승 속도에 있다”며 “경사가 너무 가파르면 증시가 조정을 받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에 따라 최근 증시의 단기 급등과 원화가치 상승에 부담을 느끼는 투자자라면 원화 강세 때 실적 개선이 기대되는 업종을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외화부채 비율이나 원재료 수입 비중이 높은 기업은 비용이 줄어들어 긍정적이다. 전문가들은 업종별로는 철강·정유·항공과 그간 수출주에 가려 상승세에서 소외됐던 내수주 등을 수혜 업종으로 꼽고 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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