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나는 실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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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철호
논설위원

곧 개각이 있을 모양이다. 청와대와 한나라당도 물갈이되는 분위기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하는 정부답게 일쟁이들이 추슬러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후보군(群)을 봐도 ‘실무형 개각’으로 굳어지는 흐름이다. 청와대 비서실이나 대선 캠프 출신이 태반이다. 이 대통령 입장에선 편하게 일할 ‘일쟁이’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의 눈에는 다르다. ‘아바타 정치’나 ‘회전문 인사’로 비치기 십상이다.

 이 대통령은 분당 보궐선거의 패배 원인을 ‘잘했다-못했다’로 판단한 모양이다. 유권자의 진짜 판단기준은 ‘좋다-싫다’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 정부의 성적표는 나름 괜찮은 편이다. 경제위기를 극복했고, 국가신용등급은 올랐다. 분당 집값도 미국·남유럽과 비교하면 하향 안정 쪽이다. 서울 증시는 연일 달아오르는 중이다. 그럼에도 집권 여당이 졌다. ‘잘못했다’보다 ‘마음에 안 든다’, 말하자면 이성보다 감성이 작동한 게 분명해 보인다.

 정치부 기자들은 권력 흐름을 알아채는 데 귀신들이다. 선거 후 이들은 3명의 한나라당 정치인에게 질문 공세를 폈다. 박근혜 전 대표와 이상득 의원, 이재오 특임장관이 그 주인공이다. 누구의 해외순방에는 23개 언론사가 따라붙었고, 누구는 승용차 문 앞까지 기자들이 우르르 쫓아갔다. 그들은 한결같이 “실세가 아니다”며 손사래 쳤다. 알맹이 있는 답변도 없었다. 누구는 “내가 기사를 줄 수 없다”고 했고, 누구는 트위터에 “배신을 당하면 하늘을 보고 허허 웃어라”라는 선문답(禪問答)을 올렸다. 하지만 국민의 뇌리엔 정치부 기자들이 집중적으로 뒤쫓는 것 자체가 실세로 각인된다. 정치에선 팩트(사실)보다 인식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이번 분당 선거를 통해 우리 선거판도 연예계를 닮아가는 느낌이다. 연예계는 요즘 ‘걸 그룹’이 지고, 소름 끼치는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진짜 가수들이 대세다. 분당 유권자들도 화려한 경력과 화장발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자신을 던지며 몸을 낮춘 후보를 선택했다. 진정성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누가 잘하느냐의 이성보다, 누가 마음에 드느냐의 감성이 승부를 가른 셈이다. 하찮은 감성이라 우습게 볼 일도 아니다. 세계적 신경과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시오는 “이성은 감성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이성이 된다”고 했다. 투표 같은 사회적 행위는 결국 감정을 관장하는 뇌 부위에서 이뤄진다는 이야기다.

 한나라당에서 일부 실세의 2선 퇴진 요구가 터져 나온다. 그러나 번지수를 잘못 짚은 느낌이다. 아바타들의 ‘실무형 내각’과 정정당당한 ‘실세형 내각’ 가운데 어느 쪽이 국민 감성에 어울릴지 살펴볼 일이다. 실세면 실세답게 국무총리, 당 대표, 청와대 비서실장을 나눠 맡아 제대로 게임을 벌이는 장면을 원하지 않을까. 그래야 인사개입 구설 없이 총리도 헌법에 보장된 각료 제청권과 내각 통할권을 당당히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실무형 내각’이 편할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이 불편해할 수 있다. 박 전 대표도 출영 인사들이 우르르 몰리고, 굳이 계파 대변인까지 따로 두는 장면이 ‘천막 당사’ 시절의 모습과 영 안 어울린다. 이 의원도 그렇다. 동생이 정치적 어려움에 빠지면 “나라도 끝까지 운명을 같이하겠다”며 최전방에 나서는 게 도리가 아닐까. 이 장관 역시 90도 인사하던 때와 계파의원들을 모아놓고 군기 잡는 모습 가운데, 어느 쪽이 국민 감정에 맞는지 살펴볼 대목이다.

 청와대 안의 아바타들끼리 순장조(殉葬組)를 다툰다고 한다. 우스운 이야기다. 정말로 운명을 같이할 사람은 바로 이들 실세들이다. 요즘 TV에서 ‘나는 가수다’가 시대 흐름을 타고 있다. 정치판도 마찬가지다. 권한이 큰 실세들이 책임도 떠맡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다. 그늘에 숨지 말고 용감하게 최전선에 나서야 한다. “나는 실세다!”라는 커밍아웃과 함께 정면 승부를 걸 때가 아닌가 싶다. 분당 선거를 제대로 해석한다면 그들이 진정 몸을 던질 위기가 눈앞에 다가오는 느낌이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