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미감(美感)을 향해 날리는 드롭킥!

중앙일보

입력

문화관광부에서 주최하는 '오늘의 우리만화'라는 상이 있다. 화제가 되거나 무게감이 있거나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을 선정해 시상하는 제도다. 선정된 작품이 있고 그 작품의 작가에게 상을 수상하는데, 1999년 하반기에 〈야후〉의 윤태호가 선정되어 상을 받았다. 윤태호의 〈야후〉가 아니라 〈야후〉의 윤태호란 말은 상을 받을 대상이 '〈야후〉'라는 말이다. 상이름처럼 작품에 상을 주는 것이다.

문화관광부가 만화에 시상하는 전향적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행사이지만 매번 작품이 선정될 때마다 발표된 적 없는 기준은 논란의 여지를 낳았다. '(상을) 받을만한 작품'이라고 수긍은 하지만 기준은 매번 다르게 적용되는 것처럼 보였다. 선정작인 황미나의 〈레드문〉과 박흥용의 〈내 파란 세이버〉 그리고 문흥미의 〈THIS〉와 윤태호의 〈야후〉만을 가지고 어떤 통일된 기준을 만들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이 상은 '오늘의 우리만화'는 제목처럼 오늘날 화제가 되는 우리 만화에 힘을 주기 위해 수상하는 상이라고 생각을 정리하기로 했다.
관에서 선입관에 가득찬 특별한 기준 없이(예전의 건전만화에 상을 주는 것처럼!) 화제가 되는 작품을 구입해 공공도서관에 비치하는 일은 그야말로 새로운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칭찬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찝찝한 마음이 든다. 문화관광부에서는 매년 한국 만화를 대표하는 상은
대한민국출판만화대상을 시상하기 때문이다. 분야도 대상과 저작상, 출판상, 공로상, 스토리작가상, 신인상 등으로 세분화되어있다. 매 분기별로 수상하는 오늘의 우리만화와 조금은 겹치는 느낌이다.

다시 오늘의 우리만화로 돌아가서, 윤태호는 〈야후〉로 상을 받았다. 〈야후〉는 과거 SF라는 독특한 만화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과 허구적 사실을 조합한 만화로 이 작품에서는 '야후'라는 조직이 허구적 사실의 핵이다. 그런데 〈야후〉는 해온 이야기보다 풀어갈 이야기가 많은 작품이다. 해온 이야기만으로도 작품의 완성도는 충분히 평가받을만 하지만 해야할 이야기가 많은 작품에 상을 주는 것은 아마 격려의 차원이었을 것이다.(고 믿기로 했다)

윤태호는 〈미스터 블루〉에 〈혼자자는 남편〉, 〈연씨별곡〉, 〈수중별곡〉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작가다. 만화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작품 속에 드러내는데 익숙하다. 관습적으로 굳어진 장르의 구분이나 형식의 구분 대신 자신의 작품을 통해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한다. 〈미스터 블루〉에서 연재한 작품을 통해 성인만화의 외연을 넓혀가며 자유로운 상상력을 자랑한 작가는 〈야후〉와 〈수상한 아이들〉이라는 작품으로 청소년 만화에 도전했다.

여기서 주목할 작품이 〈수상한 아이들〉이다. 펜과 먹을 버리고 싸인펜으로 그린 이 작품은 기존 만화의 규범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작품이다. 작가 스스로 수상한 만화는 수상해야 한다며 "수상하지 않고 뚜렷한 결말을 주는 것은 배반"이라고 말한다. 〈수상한 아이들〉은 우리를 배반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상하다. 제목부터 '수상하면 다시 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로 우리에게 익숙한 '수상한'을 '수상(水上)'으로 바꾸어버렸다. 만화의 세련된 규범을 모두 벗어버린다. 중원에 나오기 위해 폭포 밑에서 오랜 세월동안 갈고 닦았을 펜과 먹 그리고 톤의 사용도 역시 수상하다. 이야기의 전개 방식도 자기 맘대로. 엄청난 키에 덩크 슛을 터트리고 축구부 스트라이커 제의를 받는 아이들이 '수구부'를 결성한다. 그리고 매점 누나를 감독으로 삼는다. 가슴에 줄을 그러놓고 운동장에서 수구를 하고, 양재천에서 연습을 한다. 수구부원들은 아무 생각없이 비인기종목인 수구에 매달리며 매점 누나의 말도 안되는 지시에 따르며 자신들을 자학하는 것 같다.

맞다! 자학(自虐)이다. 궁상스러움의 도를 넘어서면 자학이 되고, 자학을 즐기면 경지에 으르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매점 누나에 매달린 신흥종교집단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수구부원들은 신선의 경지에 다다른다. 교장선생님이나 학생주임선생님까지 이들을 레크레이션부로 보이게 하는 경지는 고도의 수련을 필요로 한다.

〈수상한 아이들〉에는 말도 안되는 스포츠부를 소재로 한 작품 중 우리를 환호하게 한 〈렛츠고 이나중 탁구부〉, 〈금붕어주의보〉에 뒤지지 않는 내공의 힘이 엿보인다. 만화세대 작가와 만화세대 독자가 형성될 때 출현하는 궁극의 만화라 부를 수 있지만 그보다 윤태호의 빛나는 상상력이라 부르고 싶다. 다른 어떤 수식어로도 설명하기 힘든 만화적 상상력의 재미를 주는 〈수상한 아이들〉. 내 굳어있는 미감을 향해 날리는 드롭킥!

※ 〈수상한 아이들〉은 서울미디어랜드에서 1999년 10월에 1권이 나왔고 2000년 1월에 2권이 나올 예정.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