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진의 서핑 차이나] 사진으로 보는 ‘부흥의 길’ #1

중앙일보

입력

“국치를 잊지말자! 중화를 진흥하자!”
지난달 23일 중국 베이징 천안문광장 바로 옆에 자리잡은 중국국가박물관을 찾았다. 중국역사박물관과 중국혁명박물관 두 개의 건물이 중국국가박물관으로 한데 합쳐져 올 3월1일 문을 열었다. 개장을 기념해 박물관 북쪽 1층과 2층에서 ‘부흥의 길’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1840년 아편전쟁으로부터 현재까지 중국의 역사를 국치에서 벗어나 부흥을 이루기 위해 중국인들이 겪었던 과정을 비주얼하게 보여줬다. 관람을 마치면 전자방명록이 마련돼 있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전시회를 본 중국인들의 심정은 대동소이한 듯했다. ‘국치를 잊지 말고, 중화를 진흥하자’라는 식으로 그들의 애국심이 북받쳐 오르도록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했다.
반면에 서구의 시각은 다르다. 뉴욕타임스는 4월4일자 1면과 2면 두 개 면에 걸쳐 중국국가박물관과 부흥의 길 전시회를 비판했다. 뉴욕타임스 베이징 특파원은 익명을 요구한 베이징대학 고고학 교수의 입을 빌어 공산당을 힐난했다. “이 전시회는 진짜 역사라기보다 선전이라고 해야한다. 갈등을 무시했다. 진짜 역사는 이래서는 안된다.”
‘부흥의 길’ 전시회에는 대약진 운동의 참담한 실패도, 문화대혁명의 광기도 보여주지 않는다. 중국공산당의 성취만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의 어두운 면은 철저히 감췄다. 그렇다고 이 전시회 자체를 평가 절하 하는 것 또한 적절치 않다. 현대 중국인들의 ‘망탈리테(mentalité)’를 읽는데 이 전시회보다 나은 것은 없다. 아래는 사진으로 보는 ‘부흥의 길’ 전시회이다.

▲전시회 끝에 마련된 전자방명록에 글을 남기는 관람객들. ‘잊지 말자(勿亡)’라는 글이 선명하다.

▲전시회 입구 ‘부흥의 길’을 형상화 해 놓은 대형 부조물

▲제1부 1단원. 반식민지 반봉건사회에 빠져든 중국

▲1885년 산서성 지방 과거시험의 답안지다. 엄격하게 글자수를 맞추는 명대 이래의 팔고문은 지식인들의 사상을 엄격한 틀에 가뒀다고 설명해 놓았다.

▲청나라 황실의 조정회의 모습을 그린 2009년 작품

▲일본군의 중국인 대학살 장면을 그린 회화 작품. 2009년작

▲고난의 중국인민. 리샹쥔 2009년작

▲중국인민들의 각성과 항쟁이 시작된다. 1장 3단원

▲아편전쟁당시 양광총독이었던 등정정(1776~1846)과 광동수사제독이었던 관천배(1781~1841)가 호문포대에서 영국군에 대항해 싸우는 모습을 청동으로 조각해 놓았다.

▲1898년 화교였던 사찬태가 그린 '시국도' 중국을 유린하는 서구열강을 곰, 독수리, 뱀, 태양, 개구리 등으로 형상화 했다.

▲2장. 구망 생존의 길을 탐구. 오른쪽 작품은 왕셰주의 1961년작 금전기의. 1851년 태평천국을 발동한 홍수전의 모습을 그렸다.

▲'지주계급 양무파의 자강 구부 운동' 양무운동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1890년대 양무파가 상하이에 세운 '화성방직총국'

▲'만국의 형세는 변하면 온전하고, 변하지 않으면 망한다. 전체가 변하면 강해지고, 조금만 변하면 역시 망한다." 자산계급 유신파의 변법활동. 강유위의 상서와 광서제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무술변법운동으로 중국 최초의 근대 학교가 세워졌다. 베이징대학의 전신인 경사대학당의 현판이 보인다.

▲올해는 신해혁명 발발 100주년이다. 신해혁명으로 청황실을 무너뜨린 쑨원의 초상.

▲1911년10월10일 후베이성 무창에서 일어난 무창기의를 형상화해 놓은 모습.

신해혁명 발발 당시의 사진들.

남경임시정부 성립 후 중화민국이 사용한 오색기. 오색은 한족, 만주족, 몽고족, 회족, 티베트족을 상징한다.

신해혁명도 실패했다. 이후 신문화운동이 흥기한다. 오른쪽 위는 신해혁명의 과실을 빼앗은 원세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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