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뚱뚱해야 노래 잘 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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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호 05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메트)의 이번 시즌 ‘얼굴’은 데보라 보이트(61ㆍ소프라노)입니다. 메트는 요즘 영상 판매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뉴욕서 공연된 오페라 12편을 전부 영상으로 찍어 45개국에 수출했죠. 한국에서만 세 곳서 틀고 있습니다. 호암아트홀ㆍCGVㆍ워커힐 호텔에서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죠. 보이트는 이 영상물에서 진행자 겸 리포터를 맡고 있습니다. 마이크를 쥐고,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무대 뒤 성악가들을 만납니다. 작품 해설, 출연진 소개도 하죠.
그런데 잠깐만요. 데보라 보이트? 2004년 해외 토픽에 등장한 인물이죠. 당시 몸무게가 100㎏을 훌쩍 넘겼습니다(사진1). R 슈트라우스의 복고풍 오페라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를 런던에서 부르기로 했다가 갑자기 “제명이 되었습니다”. 연출이 현대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연출가는 몸에 달라붙는 검정 드레스를 원했는데, 보이트는 입을 수 없었습니다.

김호정 기자의 클래식 상담실

이 사건 후 보이트는 위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45㎏을 감량했다고 합니다(사진2). 우아한 몸매로 바뀐 보이트는 메트에서 ‘화면발’을 인정받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할 수 없었겠죠. 그리고 메트가 힘껏 밀고 있는 이번 시즌의 작품, 바그너 ‘니벨룽겐의 반지’에서 브륀힐데 역을 맡았습니다. 신들의 신인 보탄이 가장 아끼는 딸입니다. 전쟁터에서 주로 일하죠. 사랑스럽고도 용맹한 미인입니다. 보이트가 예전 몸매 그대로였다면 맡을 수 있었을까요.

성악가는 몸집이 좋아야 노래를 잘 할까요? 체중을 감량하면 노래를 못하게 될까요? 성악가들은 “아니다”라고 답합니다. 바리톤 최현수씨는 “살만 찐 성악가는 지구력이 떨어진다. 숨도 짧아진다”고 말합니다. “소리ㆍ성량을 좌우하는 건 몸집이 아니라 성대 생김새다.”(소프라노 임선혜) “사람마다 얼굴처럼 목소리가 다르다. 뚱뚱해서 다 잘하는 것도, 말랐다고 다 못하는 것도 아니다.”(베이스 전승현) “발성과 살집은 상관이 없다. 노래 잘 하는 사람이 몸도 풍만한 경우가 많을 뿐이다.” (테너 박인수)

그래서 많은 성악가가 다이어트에 돌입했습니다. 노래 잘 하고 몸매도 날씬한 소프라노가 늘어납니다. 요즘 뜨는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 엘리나 가란차, 마이야 코발렙스카, 모이카 에르드만 등이 오페라에서 노래ㆍ연기하는 동영상을 보세요. 영화배우 못지않죠. 남자 성악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요나스 카우프만,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 어윈 슈로트 등은 성악가의 넉넉한 체형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집습니다.

현대의 오페라는 각종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경쟁을 시작했습니다. 메트의 가열찬 영상화 작업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악기 연주자들과 달리 드라마를 표현하는 성악가들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연예인마냥 다이어트하는 성악가도 늘어나겠죠. 외모 경쟁만 과열될까요, 아니면 오페라의 새로운 전성기가 열릴까요.

A 성악가는 “근거 없어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질문을 받습니다.클래식을 담당하는 김호정 기자의 e-메일로 궁금한 것을 보내주세요.


김호정씨는 중앙일보 클래식ㆍ국악 담당 기자다. 읽으면 듣고 싶어지는 글을 쓰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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