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의 금요일 새벽 4시] “네가 출판사로 가고, 제수씨를 이리 보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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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개나리가 한창입니다. 흰 목련과 분홍 진달래도 좋고요. 디자이너인 저는 ‘색(色)’에 민감합니다. 특히 j는 컬러의 향연이 돋보이는 신문입니다. 사진도 큼직하고, 매 호마다 기사 주제에 맞게 다양한 색을 골라 씁니다. 근데 이게 참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감 뒤 가끔 팀원들에게 “이번 호, 색이 좀 아니지 않나?” 한마디를 듣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건 나은 편입니다. 아내한테 깨질 때는 영 죽을 맛입니다. 아내는 국내에서 한 손가락에 꼽히는 출판사의 디자인 팀장입니다. 그래서 신문을 그저 독자로서 보질 못합니다.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품평회가 열리죠. 대부분 저를 닦달하는 시간입니다. “색이 왜 이렇게 떴어요?” “인물 사진 외곽 따기는 왜 이렇게 거칠어요?” 얼마 전엔 이런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당신, 색맹 아니야? 이렇게 색을 섞으면 글씨가 보여요?” 아내의 실력을 잘 아는지라 찍소리 못했죠. 뒤돌아 분노의 눈물을 훔치며, 절차탁마를 다짐했습니다. 그 뒤로 한번은 마감하고 휴대전화로 지면을 보여 줬더니, 이런 문자가 오더군요. “음, 좀 낫군.” 질책은 길고, 칭찬은 참 짧습니다. 이번 마감 뒤 저녁 자리에서 “요즘은 집사람이 조용하다”고 전했습니다. 에디터의 비수가 날아옵니다. “결국 포기했구나. 내일부터 네가 출판사로 출근하고, 제수씨를 회사로 보내라. 아무래도 그게 낫겠다.” (김호준)

◆j 의 ‘기사 회의’는 도발적입니다. 에디터부터 막내까지 계급장 떼고 합니다. 할 말, 못할 말 다 나옵니다. 섣부른 아이디어를 냈다간 단칼에 ‘깨~갱’입니다. 그만큼 엄격한 잣대, 일류라는 가늠자를 대고 인물 후보를 선정합니다. 지면 구성도 마찬가지입니다. 편집자로서 ‘콘텐트 다양성’을 충족하려 최선을 다합니다. 평소 j 를 자세히 보시면 면별로 ‘성별·직업·연령’ 등이 다채로운 걸 느끼셨을 겁니다. 독자의 다양한 기호를 충족하고, 지면 활력을 높이기 위해서지요. 지난주 회의에선 한 팀원의 지적으로 한 시간 동안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여성 등장인물이 적다.” “찾기가 쉽지 않은데 어쩌냐.” “그래도 더 발굴해야 한다.” 모두 수긍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디어는 책상에서 머리 굴린다고 나오지 않습니다. 많이 듣고, 많이 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습니다. 많이 마시면 떠오른다는 겁니다. 저희는 회식 자리에서 ‘대박 아이템’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한잔씩 하다가 누군가 불쑥 화두를 던지면, 다른 사람이 화답을 하고, 또 다른 사람이 새끼를 치다 보면 “오, 바로 그거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거지요. 그러다 보니 막내 박현영 기자는 먹다 말고 스마트폰을 꺼내 메모할 때가 부지기수지요. 그런데··· 고백할 게 있습니다. 다음날 메모를 보면 썰렁해질 때가 있다는 겁니다. 간밤에 그 좋던 아이디어가 영 허접스러운 겁니다. 어림잡아 아이디어의 절반 정도는 그렇습니다. 서로 얼굴을 돌아보며 ‘뻘쭘해’ 할 수밖에요. 그럴 때 어색함을 깨기 위해 늘 나오는 소리가 있죠. “현영이 너, 메모 잘 한 거야? 취했었구나. 어제는 이게 아니었는데···.” 공연히 막내 기자만 억울합니다. “아니에요, 저 어제 안 취했어요.” 다툼을 보면서 디자인팀 최은희씨가 소리 없이 미소 짓습니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듯합니다. ‘쯧쯧, 그럴 줄 알았다. 어제, 당신들 모두 다 제정신 아니었거든···.” (이세영)

j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람신문 ‘제이’ 45호

에디터 : 이훈범 취재 : 김준술 · 성시윤 · 김선하 · 박현영 기자
사진 : 박종근 차장 편집·디자인 : 이세영 · 김호준 기자 , 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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