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 = 1087.8원 … ‘원고 시대’ 기계·정유·화학주 눈길 가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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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원화 가치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는 지난달 17일 달러당 1135.3원에서 13일 1087.8원으로 47.5원(4.2%) 상승했다. 한 달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다.

 동양종합금융증권·IBK투자증권·하이투자증권 등 주요 증권사는 올 2분기 말 원·달러 환율이 1050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원화 가치가 일시적으로 약세를 보일 수도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계속 오를 것으로 분석한다.

 원화가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세 가지다.

 우선 국내 물가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연초까지만 해도 정부는 수출 영향을 고려해 원화 강세를 용인하지 않는 입장이었다”며 “하지만 요즘 국제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상승 압력이 워낙 강해 원화 강세를 용인하는 쪽으로 정책이 전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원화 가치가 상승하면 수입 원자재를 더 싸게 살 수 있기 때문에 원자재 가격 상승 효과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세계적인 달러 약세 현상도 원화 가치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미국은 2분기까지 돈을 푸는 ‘양적 완화’를 지속한다. 이와 달리 유럽연합(EU)은 금리를 올리고 있다. 이철희 동양종합금융증권 연구원은 “유럽중앙은행(ECB)의 지속적인 금리인상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동결이 맞서면서 내년 초까지는 ‘유로 약세, 달러 약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무역 흑자가 이어지면서 늘어난 달러 물량이 원화 강세를 이끌고 있다. 이승준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엔 캐리 트레이드(이자율이 거의 ‘0’인 일본에서 돈을 빌려 수익률이 높은 다른 국가에 투자하는 것) 재개로 세계에 유동성이 크게 늘어나며 위험 자산 선호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달러와 엔이 함께 약세를 보였던 시기에는 증시에서 기계·정유·화학·철강 등 ‘구경제’ 업종이 상대적으로 호조를 보였지만 반도체·정보기술(IT)·자동차 등 ‘신경제’ 부문은 상대적으로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IT·자동차 등이 환율 변화에 대해 수출 민감도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외국인이 최근 19일 동안 국내 증시에서 순매수한 금액은 4조8000억원 정도다. 이 가운데 전기·전자업종이 28%(1조3000억원)를 차지한다. 하지만 코스피가 19일 동안 10.3% 상승할 때 전기·전자 업종지수는 4.9%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이들 업종의 올해 분기실적도 하향 조정되고 있다. 원화 강세가 IT업종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의 원화 강세는 수출을 크게 위축시킬 정도는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홍순표 대신증권 연구원은 “원화 강세로 경쟁력이 떨어지는데도 국내 수출이 양호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며 “국내 기업이 더 이상 가격 경쟁력에만 의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세계 일류 상품은 2001년 120개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553개로 크게 늘어난 것도 이를 방증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원화 강세로 수출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보다 세계 경제의 본격 성장세, 원자재 수입비 절감에 따른 기업실적 개선 등이 한국 경제와 주식시장의 전망을 밝게 해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 전문가는 원화가 강세일 때 해외 펀드의 환차손을 피하려면 환헤지형 펀드에 가입하라고 권한다. 해외펀드는 투자시점에 원·달러 환율을 고정하는 환헤지형 펀드와 환율변동에 노출하는 언헤지형 펀드로 구분된다. 또 해외에 자녀를 둔 부모는 달러 매입 시기를 늦추는 것도 방법이지만 개인은 환율 급변동에 대응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송금하는 날짜까지 적립식으로 달러를 분할 매수해 매입 단가를 낮추는 것도 방법이라고 권한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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