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상가 3층, 보증금 평당 1천만원 권리금 평당 7백만원으로 용산서 最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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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전자상가의 부동산 값은 건물의 입지나 상태, 취급 품목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같은 상가에서도 층 수나 유동 인구 동선에 따라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시세는 중개업소보다 현지 상인들이 더 잘 알고 있어 상인들 소개를 받는 게 가장 안전하다. 섣불리 중개업소에서 ‘초짜’ 분위기를 내면 실제보다 높은 권리금을 지불할 수도 있다.

경기 회복됐다지만 용산은 한겨울

“용산의 하루는 증시(證市)만큼 바쁘고 긴장의 연속입니다”는 한 상인의 말. 그는 또 말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물건 값을 체크해 사고팔기를 수도 없이 합니다”라고.

소위 용산의 ‘딜러’(도매상에서 물건을 떼다 소매상에 넘기는 중간 상인)들은 매장 안에서는 물론 점심 식사나 걸어가는 도중에도 수없이 전화를 걸고 받는다. 거래하는 물건들의 시세를 그때그때 파악하기 위해서다.

만약 이른 아침 개당 10만원씩 1백 개를 사들인 물건 값이 점심 시간에 갑자기 9만5천원으로 떨어지면 반나절 만에 앉아서 50만원을 손해볼 수 있다. 이럴 땐 9만5천원에 다시 1백 개를 사들인 다음 오전에 들여온 물건을 포함한 2백 개를 개당 9만7천5백원에 급히 또다른 거래처로 넘긴다. 물론 이 거래처는 아직 새 시세를 모르는 곳. 최소한 밑지지는 않기 위해서다. 이렇게 이루어지는 거래는 대부분 전화로 이루어지며, 불과 몇 분 만에 ‘한 상황’이 종료된다.

따라서 상인들의 머릿속은 온통 시시각각 변하는 물건 값으로 뒤범벅돼 있다. 그리고 하루에도 수십 번 전화로 주문을 낸다. 이같은 ‘정보전(情報戰)’이 가장 심한 분야는 컴퓨터 시장에서도 특히 CPU와 메모리 부문. 이들 제품은 거의 수입품이므로 환율에 따라 그날그날 단가가 달라지는데,심한 경우 하루에도 1만원씩 차이가 난다. 용산 인근 오피스텔에 자리 잡고 있는 수입업자들은 대부분 ‘큰 손’들인데, 아침에 사무실에 나오면 전화로 환율부터 체크해 당일 단가를 결정한다. 용산엔 이들 큰 손 매장이 약 5∼6개가 있다고 한다.

CPU와 메모리는 용산에서 현금으로 통용된다. 바로 결제하지 않으면 물건을 넘겨 주지 않기 때문이다.내일엔 값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데 결제 없이 물건을 거래할 수 없다. 그래서 첫 거래는 반드시 현찰로 하는 게 불문율이고, 신뢰가 형성된 거래처라야 ‘당일 저녁 6시’라는 결제 마감이 주어진다. 하지만 이같은 안전 장치가 있어도 간혹 나쁜 마음을 먹는 사람들이 있다. 오전 일찍 여러 거래처로부터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어치의 CPU나 메모리를 주문한 뒤 그날 오후 매장을 빼고 잠적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내년이면 IMF 구제 금융 체제가 끝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언론에선 증시 활황과 경기 회복 얘기로 떠들썩하지만, 용산은 아직 한겨울이라는 게 상인들의 공통된 정서다. 98년엔 극심한 IMF 불황 속에서도 PC방 열풍이 전국적으로 불어닥치면서 그럭저럭 활황을 유지했지만, 99년부터는 특별한 이슈가 없다.

게다가 용산에 자리 잡은 약 3천7백여 개의 점포가 저마다 가격 경쟁을 벌이는 탓에 이젠 턱 없이 낮은 마진으로 장사를 해야 한다. ‘백 마진’(리베이트제), ‘아도 치기’(부도 직전의 덤핑), ‘꺾어 팔기’(현금 확보 위한 덤핑) 등에 의해 정체 불명의 제품들이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면서 하루에도 수 차례 가격이 널뛰기를 한다.

임대료 2위는 선인상가 21동

용산의 비밀(?)을 아는 소비자가 많아졌다는 것도 용산 경기가 갈수록 팍팍해지는 이유 중 하나다. 가격 정보를 제공하는 전문업체나 매체가 쏟아지면서 상인들의 생명과도 같은 ‘단가’(單價)가 대부분 노출됐기 때문이다. 전문 지식을 어느 정도 갖춘 소비자들이 상인들에게 가격을 낮추라는 압력을 넣기도 한다. 게다가 요즘은 국민 PC로 인해 더욱 저가(低價) 압력에 시달리고 있어, 이에 대한 냉소적인 상인들이 많다.

용산의 경기가 좋지 않다는 것은 용산 전자상가의 부동산 경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거래가 없고, 따라서 가격 변동도 거의 없다. 일반적으로 장사가 잘 안 되면 점포 물건도 쏟아져 나올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장사가 안 되면 점포 물건도 씨가 마른다. 왜냐하면 점포 거래의 80% 가 상인끼리의 알음알음으로 이루어지는 게 이곳 관례이기 때문에, 사려는 사람이 없으면 팔려는 사람도 당연히 없다는 것.누구보다도 용산 경기를 잘 아는 상인들이 불황에 점포를 얻거나 소개하려고 하지 않는다. 또 경기가 좋으면 목이 안 좋은 점포에서 목 좋은 점포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경기가 나쁘면 기존 자리에서 매장을 유지하기에 급급하게 된다. 계약은 보통 1년 단위로 하는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동 없이 재계약을 한다.

용산에서는 전철 1호선과 연결되는 터미널 전자상가, 특히 전철역 출입구가 있는 3층의 임대료와 권리금이 가장 비싸다. 유동 인구가 가장 많기 때문. 약 2백70여 개 점포가 입주한 터미널 전자상가는 3층의 8평을 기준으로 임대료가 8천만원, 권리금이 3천만∼6천만원 수준이다. 물론 같은 3층이라도 전철역 출입구와 가까운 점포와 구석진 점포의 차이는 크게 벌어지지만 구체적인 매물이 나오기 전까진 시세를 파악하기 어렵다.

터미널 전자상가 다음으로 임대료가 비싼 곳은 선인상가 21동이다. 예전에 선인상가는 다소 뒤졌지만 주말 벼룩시장이 열리고 난 뒤부터 소비자들이 많이 찾아 일약 급부상한 곳. 선인상가는 도로와 같은 층인 2층의 시세가 가장 높다. 10평을 기준으로 임대료는 3천5백만원, 권리금은 2천만∼7천만원 수준이다. 이곳은 2층 전체와 3층의 일부 매장에 권리금이 형성돼 있고, 나머지 층은 권리금이 없다. 선인상가와 비슷한 수준인 전자랜드는 10평을 기준으로 임대료 1천5백만∼3천5백만원에 권리금은 2층 일부 매장에 5천만∼6천만원이 붙어 있다.

용산에 진입하려면 상인 소개 받아야 안전

그밖에 나진상가나 원효상가, 전자타운, 전자월드 등엔 권리금이 없고 평당 1백만∼3백만원 정도의 임대료 시세가 형성돼 있다. 월세인 경우 임대 보증금의 10%를 월세로 낸다.

외부인이 용산 전자상가에 진입하려면 현지 상인의 소개나 도움을 받는 게 좋다. 목이 좋은 물건은 부동산 중개업소로 유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철저히 상인들끼리의 정보 교환으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설사 중개업소에서 괜찮은 물건을 소개받는다고 하더라도 중개업자에게 용산의 ‘초짜’ 취급을 받으면 권리금에서 농락당할 수도 있다.

용산의 진정한 발전을 기대하는 뜻있는 사람들에게서 ‘용산에 유통(流通)은 있지만 연구 개발(R&D)이 없다’는 자책과 푸념이 들리기도 한다. 첨단 제품들이 쏟아지는 국내 최대의 전문 시장이지만 용산에서 벤처가 태어나고 재벌이 탄생하는 신화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는 것. 또 일본의 유명 전자상가 아키하바라는 벤처와 신제품이 각축장을 벌이는 시험 무대지만, 용산은 온갖 편법과 상술만이 난무한다는 싸늘한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자본력이 있는 사람은 용산을 떠나고 대부분 1억∼2억, 많아야 3억∼4억원 정도의 현금력을 가진 상인들이 치열한 가격 경쟁으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도 전한다. 새 천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용산의 일부 뜻있는 상인들은 용산의 진정한 발전을 기원하며 스스로부터 변화할 것을 다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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