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억 들인 ‘판박이 홍보관’ 12곳 시민들 외면 … “정말 세금 무서운 줄 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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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감시-시민CSI’ 단장인 이석연 전 법제처장과 시민 오현옥(보험컨설턴트)씨가 6일 오후 서울시 강북구 번동에 있는 ‘북서울 꿈의 숲’ 디자인 서울갤러리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시장·군수를 홍보하는 데 필요한 돈은 최우선 집행된다. 의회가 막아도 아랑곳없다. ‘예산 숨기기’나 ‘예산 쪼개기’ 같은 편법도 서슴지 않는다. 의회 눈을 속이기 위해서다. 의회가 그래도 막으면 추경예산을 편성해서라도 집행한다. 그러나 화려한 홍보관을 찾는 시민은 거의 없다.

2500만원 계단, 20분 행사 위해 …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 내 언덕에 임시로 설치된 철제 계단. 서울시는 4일 오세훈 시장이 참석한 식목행사를 위해 비탈길에 2500만원을 들여 100여m 길이의 계단을 설치했다. 쓰러진 나무 베어 내기(왼쪽 원 표시), 묘목 심기(오른쪽 원 표시) 순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20여 분 만에 끝났다.

◆공원을 홍보관으로=서울시내 공원 등 12곳에 ‘디자인 서울갤러리’라는 이름의 시정 홍보관이 있다. <표 참조> 시민 휴식공간이 시 홍보관이 된 셈이다. 시의회 정용림 의원은 “갤러리 12곳을 설치하는 데 59억3500만원이 들었다”고 밝혔다. 갤러리의 절반 이상은 민선 4기 시정 홍보공간이다. 나머지는 공원· 박물관 관련 내용이다. 지난해 말 민선 5기 홍보물로 교체하기 위해 26억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의회 심의과정에서 일부 삭감됐지만 추경예산을 편성해 추진하겠다는 각오다.

 시민 CSI의 이석연 단장은 “이런 홍보는 시민과 벽만 쌓게 만들 뿐”이라고 개탄한 뒤 “동네마다 작은 공원을 만드는 게 더 낫다”고 지적했다. 오현옥 요원도 “시 홈페이지에 가면 다 있는 내용을 옮겨놓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12곳에 비슷한 내용을 전시하다니 정말 세금 무서운 줄을 모른다”고 분노를 터뜨렸다.

 ◆과잉 충성·편법도 문제=익명을 요구한 시 관계자는 “시장의 역점 사업을 홍보하는 일이라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경쟁적으로 밀어붙이는 분위기가 있다”고 시인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이는 오세훈 시장 이전부터 있어온, 민선 시장에 대한 과잉 충성”이라고 털어놨다.

 시의회 이재식 의원은 “갤러리 사업 주체가 문화관광디자인본부인데도 예산은 다른 국, 본부에 편성하는 예산 숨기기·쪼개기 수법을 동원했다”며 “이 때문에 심의과정에서 걸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업별 예산을 이곳 저곳에 분산시켜 놓아 감시를 피했다는 비판이다. 이석연 단장은 “의회가 이런 것을 잡아내야 한다”며 “보다 세심하고 전문적인 심의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텅 빈 갤러리=시민 CSI와 취재진이 번동 ‘북서울 꿈의 숲’ 내 디자인 갤러리를 찾은 6일 오후, 관람객은 거의 없었다. 디자이노믹스, 소프트 서울, 세계디자인 수도, 한강르네상스 사업 등 역점 사업이 전시돼 있다. 대형 스크린에서 ‘푸른 서울의 미래 모습’이 동영상으로 나오고 있었다. 갤러리는 곧 민선 5기 서울시 비전, 유네스코 디자인 창의도시, 서울시 정책홍보 영상 등으로 콘텐트를 바꾼다. 주민 이용석(58)씨는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며 “사람들이 찾지도 않는 곳에 돈을 들여 시정 홍보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

 갤러리 무용론에 대해 서울시 측은 “생활 밀착형 내용을 중심으로 민선 5기 시정에 맞게 업데이트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시민과의 소통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탐사기획부문=진세근·이승녕·고성표·권근영·이지상 기자, 이정화 정보검색사, 사진=김태성 기자, 프리랜서신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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