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국회의원 부인의 ‘주식 사랑’

중앙일보

입력

관련사진

photo

배영식 한나라당 의원.

이코노미스트 3월 25일 국회의원 재산이 공개됐다. 600쪽이 넘는 국회의원 재산변동 신고 내역 자료에서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이 있다. 초선인 배영식(대구 중·남구) 한나라당 의원이다. 그는 1년 사이 주식 재산이 11억원 늘었다고 신고했다.

배영식 의원 배우자 36개 종목 40만 주 보유 … 배 의원은 주식백지신탁 위헌소송

배 의원의 재산이 증가한 것은 부인 문모씨가 보유한 주식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이번 재산공개 내용에 따르면 배 의원의 부인은 36개 종목 40만 주를 보유하고 있다. 신고한 가액은 40억682만6000원.

국회의원 재산 가운데 주식은 문제가 될 수도,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를 판단하는 기준은 직무 연관성이다. 우리나라는 고위 공직자가 보유한 주식 총액이 3000만원을 넘는 경우 직무 연관성을 심사해 관련이 있으면 팔거나 신탁을 하도록 법(공직자윤리법)으로 규정한다. 고급 정보 취득이 상대적으로 쉬운 고위 공직자가 정보를 이용해 주식 거래를 하거나 주가에 영향을 미쳐 재산을 늘리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다. 2005년 11월 시행됐다. 대상은 국회의원과 장·차관을 비롯한 1급 이상 공직자다. 주식과 관련이 깊은 재정경제부나 금융감독위원회 등은 4급 이상 공직자가 대상이다.

직무 연관성 심사는 행정안전부 산하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이하 신탁위)가 한다. 신탁위에서 보유 주식이 직무와 관련 있다고 결정하면 공직자는 한 달 이내에 처분하거나 수탁기관에 신탁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1년 이하 징역,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신탁한 주식은 60일 이내에 처분한다.

배 의원, 정부 상대로 행정소송
2008년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배 의원은 기획재정위원회에 배정됐다. 직후 신탁위는 배 의원이 보유한 주식 39종목이 직무와 연관성이 있는지 심사했다. 결과는 ‘직무 연관성이 있다’였다. 이 경우 모든 고위 공직자는 주식을 매각하거나 신탁을 한다. 법이자 지켜야 할 의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 의원은 불복하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배 의원은 2008년 9월 신탁위를 상대로 직무 관련성 인정결정처분 취소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주식백지신탁제도를 시행한 후 신탁위를 상대로 소송을 건 것은 배 의원이 처음이다. 2009년 4월 첫 판결이 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이경구 부장판사)는 배 의원에게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배 의원이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직무를 수행하고 있어 비공식 고급 정보를 접할 가능성이 크고 법률 입안과 예산 심의를 통해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배 의원은 항소했다.

소송은 위헌소송으로 이어졌다. 행정법원 2심 재판부는 “다른 방식을 고민하지 않고 매각과 주식백지신탁 방식을 채택한 것은 사유재산 제도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해 재산권을 보장한 헌법에 위반된다”며 배 의원의 신청을 받아들여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지난해 12월 9일 헌법재판소에서 공개 변론이 열렸고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당시 배 의원 측 변호인과 참고인은 “고위 공직자에게 주식 매각만 강요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라는 요지로 변론했다. 반면 정부 측 변호인과 참고인은 “공직자의 직무 공정성과 그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해충돌의 소지가 있는 주식의 보유 자체를 금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국회 기획재정위는 나라 경제 전반을 다룬다. 당시 배 의원의 부인이 보유한 주식 39개 종목은 이동통신, 반도체, 전자, 제약, 증권, 방송, 바이오, 중화학 업종이 망라됐다. 신탁위가 주식을 처분하거나 신탁하라고 결정한 배경이다. 배 의원이 정무위원회로 상임위가 바뀐 뒤에도 신탁위는 보유 주식과 직무에 연관성이 있다고 결정한 것으로 취재 결과 드러났다.

관련사진

photo

주식 투자 규모 점점 증가
배 의원이 신탁위의 결정에 불복해 소송이 벌어지는 사이 재산은 급증했다. 다른 주식을 추가 매입하지는 않았지만 증자와 액면분할, 합병 등으로 주식 수가 늘고 주가가 오르면서 주식 재산은 2009년 19억9000만원, 2010년 29억원, 2011년 40억원으로 늘었다.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는 전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을 기준으로 한다. 이코노미스트가 배 의원 부인이 보유한 주식의 3월 29일 현재가를 조사했더니 41억3500만원이었다. 재산 신고 이후 1억원 이상 증가했다. 물론 재산 변동 신고 후 주가가 올라 재산이 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재정경제부 기획관리실장(1급) 출신인 배 의원은 2002년 6월부터 3년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을 지냈다. 그 후에는 기업의 신용을 평가하는 한국기업데이터 사장을 3년간 역임했다.

배 의원이 재경부 고위직일 때도 부인 문씨는 주식 투자를 했다. 2002년 2월 재산 공개 자료에는 은행 대출금(5500만원)을 주식 매각대금으로 상환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사고판 종목은 17개다. 신보 이사장이었던 2004년 2월 자료에는 은행에서 2억원을 빌려 주식 매입과 대출금 상환에 사용했다고 신고했다. 당시에는 19개 종목을 거래했다. 2005년 2월 재산 공개 내역에는 22개 종목을 사거나 팔았다고 신고했다.

2006년 전에는 재산 총액이 아닌 변동액만 공개했기 때문에 배 의원의 주식 자산이나 전체 재산 총액이 얼마나 늘었는지 알기는 어렵다. 다만 2002년에는 사고판 종목 총액이 1억원이 안 됐지만, 2004년에는 2억5000만원, 2005년에는 5억4000만원으로 늘어난 것은 확인된다. 그리고 재산 공개 의무가 없었던 한국기업데이터 사장(3년)을 거쳐 2008년 국회의원 당선 직후 공개한 재산 내역을 보면 토지와 건물은 5억7000만원, 주식은 35억원이었다.

그렇다면 배 의원 부인의 주식 투자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현직 애널리스트에게 이름을 밝히지 않고 배 의원 부인이 보유한 주식 리스트(종목, 현재가)를 보여주고 분석을 부탁했다. 그는 “일반 고액 투자자 가운데 100억원 이상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가 많아 고액 투자자 대비 많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단기간이 아닌 장기간 사들인 것으로 보인다”며 “고수라고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주식에 상당히 관심이 많은 것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본지는 배영식 의원에게 소송 배경과 부인의 투자 이력, 공직자의 개인재산권과 주식백지신탁 제도에 대한 견해 등을 묻는 e-메일을 보냈다. 의원실 관계자는 “해명할 이유가 없다”며 “배영식 의원의 부인은 전업주부일 뿐”이라고만 밝혔다.

주식백지신탁 제도는 고위 공직자의 청렴 의무, 지위 남용 금지, 직무 공정성, 국가이익 우선 등의 철학을 담은 법이다. 미국에서도 직무 범위가 포괄적인 국회의원 및 공무원에 대해 백지신탁으로 보유 주식 매각을 강제하는 법을 두고 있다.

배 의원이 신탁위의 결정에 불복해 사상 처음으로 소송을 낸 이후 국회의원 한 명, 지방자치단체장 한 명이 같은 이유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