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f&] 나는 그린키퍼, 골프장 ‘잔디 관리 대통령’ 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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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그린키퍼는 골프 코스의 잔디를 가꾸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그린의 잔디 길이를 적정하게 관리하고,핀 위치를 선정하는 것도 그린키퍼의 몫이다.경기도 여주 나인브릿지 골프장의 그린키퍼들이 그린 위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여주=김성룡 기자]


본격적인 골프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골프장들은 손님 맞이 준비에 한창입니다. 페어웨이에는 새파란 잔디가 고개를 내밀고 그린은 초록빛 물결로 새 옷을 갈아입습니다. 이번 주 golf&은 골프장에서 잔디를 가꾸고 관리하는 그린키퍼의 세계를 들여다봤습니다.

경기도 여주에 위치한 해슬리 나인브릿지 골프장. 명문 골프장답게 회원권 가격만 12억원이다. 여기에 회원들은 별도로 1000만원의 연회비를 낸다. 골프장 측은 이에 걸맞게 회원들을 위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코스 상태다. 해슬리 나인브릿지 골프장의 대표적인 자랑거리는 전 홀에 설치된 서브에어 시스템(공기순환장치)과 하이드로닉(냉난방) 시스템이다. 서브에어 시스템은 그린 바닥에 설치된 배수관을 통해 공기를 불어넣기도 하고 빼내기도 하는 장치를 말한다. 온도 및 날씨 변화에 따라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고 비가 올 때는 그린에 고인 물을 강제로 빼내 고이지 않게 한다. 하이드로닉 시스템은 흙의 온도를 따뜻하게 하거나 반대로 차갑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겨울철에도 그린에서 볼이 튀지 않는다.

이렇게 골프장의 잔디를 관리하는 사람을 그린키퍼라고 부른다. 해슬리 나인브릿지에서 그린키퍼로 활동하고 있는 허주현(41) 대리는 “골프장에 첨단 시스템이 있어 더욱 신경이 쓰인다. 고객들이 ‘그린이 뭐 이래’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린키퍼들은 보통 새벽 5시에 출근해 저녁 8시 무렵 퇴근한다. 여름철에는 해가 길기 때문에 출근 시간이 빨라지고, 퇴근 시간은 더 늦어진다. 주말에는 더욱 바쁘다. 휴장일에는 밀린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주 5일 근무는 꿈도 꾸지 못한다. 그린키퍼들은 첫 팀이 티오프하기 1시간 전에 그린 정비를 마친다. 그린을 깎고 롤러로 잔디를 다지기도 한다. 그린 주변의 러프도 깎고 핀도 새롭게 꽂는다. 보통 3명이 그린 하나를 정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5분 정도. 18홀 그린을 정비하는 데 4시간 정도 소요된다. 마지막 팀이 1번 홀에서 티오프하고 나가면 그린 키퍼들은 페어웨이를 정비한다. 잔디를 깎고, 벙커 정리도 한다. 보통 골프장에 있는 그린 정비 기계는 40대 정도. 페어웨이나 러프 깎는 기계는 대당 가격이 5000만~7000만원이나 한다.

보통 그린키퍼가 되는 데는 7~8년이 걸린다. 코스 관리팀에 입사해 수없이 많은 이슬을 맞은 뒤에야 비로소 그린키퍼가 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골프장경영협회가 설립한 한국잔디연구소에서 1년 과정의 그린키퍼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린키퍼 팀장들의 연봉은 골프장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5000만~6000만원 선이다. 허씨는 “남들 쉴 때 쉬지 못하고 야외에서 일하는 만큼 젊은 사람들은 오래 못 버티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잔디에 대한 애정과 희생정신이 없으면 그린 키퍼로 일하기 쉽지 않다”며 “힘은 들지만 전문 직종으로서 보람도 느낀다”고 말했다.

그린키퍼들은 자신들을 빵점 아빠라고 한다. 항상 주말에 일하고, 공휴일에도 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바쁘다 보니 아이들하고 제대로 놀아준 적이 없다. 야외에서 일한 탓에 얼굴도 새까맣게 타서 ‘눈과 이빨만 보인다’는 소리도 자주 듣는다. 그래도 아마추어 골퍼들이 라운드를 마친 뒤 ‘코스 상태가 무척 좋다. 그린이 정말 좋다’고 말해주면 큰 보람을 느낀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린키퍼들이 가장 싫어하는 계절은 장마철이다. 장대비로 인한 피해도 걱정이지만 그린키퍼들에게는 전염병이 가장 무서운 적이다. 그중에서도 그린키퍼들에게는 잔디 전염병인 피시움(Pythium)이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이다. 피시움은 처음에는 동전 모양으로 발생하지만 하루 만에 물길을 따라 전염되는 무서운 병이다. 잔디가 이 병에 걸리면 색깔이 볏짚처럼 노랗게 변하고, 악취가 나면서 1~2일 만에 잔디가 없어지고 맨땅만 남는다. 전염 속도도 빨라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면 하루아침에 홀 전체로 번질 수도 있다. 잔디 3.3㎡(1평)당 가격은 1만5000원 정도. 만일 1개 홀 잔디 전체가 피시움에 걸리면 잔디를 새로 까는 데 드는 비용만도 엄청나다. 허씨는 “대부분의 잔디 전염병은 장마철에 생긴다. 저녁에 방심했다간 페어웨이 그린 전체를 다 망칠 수도 있다. 장마철에는 약을 써도 비에 씻겨 내려가기 때문에 항상 긴장해야 한다. 그래서 그린키퍼들은 가을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며 “그래서 장마철에는 꼬박 밤을 새우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린키퍼들은 아침에 출근했을 때 잔디가 파랗게 피어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허씨는 “잔디는 사람과 똑같다. 애정을 갖고 대하면 잔디가 금방 자란다. 그런가 하면 여름철에는 잔디도 스트레스를 받아 잘 자라지 않는다. 잔디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없으면 좋은 그린 키퍼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핀 위치 선정도 그린 키퍼의 몫

10년째 그린키퍼로 일하고 있는 해슬리 나인브릿지 골프장의 허주현 씨가 기계로 잔디를 깎고 있다. [나인브릿지 골프장 제공]


골프를 할 때는 그린의 어느 위치에 핀이 꽂히느냐에 따라 스코어가 크게 달라진다. 그런데 핀 위치를 정하는 것도 그린키퍼의 몫이다. 그래서 골퍼들은 핀 위치가 어려운 날이면 종종 “오늘 아침 그린키퍼가 부부 싸움을 했나 보네”라고 말하기도 한다. 허씨는 “종종 그런 말을 듣지만 핀 위치와 그린키퍼의 심기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린 위에 핀을 꽂는 위치는 크게 앞핀, 중핀, 백핀으로 나누고 내리막에서는 볼을 굴려 멈춘 지점 위로는 절대로 핀을 꽂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빠른 경기 진행을 위해 주말에는 주로 중핀이나 백핀을, 주중에는 앞핀을 꽂는다고 했다. 특히 주말에 그린 앞쪽에 핀을 꽂으려면 벙커 바로 뒤쪽은 피한다고 말했다.

양잔디의 경우 페어웨이는 보통 10~12㎜, 켄터키 블루 잔디는 15~20㎜, 일반 한국형 잔디인 중지·야지는 25㎜ 정도로 깎는 편이다. 양잔디에서는 볼을 쓸어치는 것이 오히려 잔디에는 더 안 좋다.허씨는 “양잔디의 경우 볼과 잔디가 거의 붙어 있다. 쓸어치면 오히려 잔디의 눈이 없어져 죽게 된다. 디벗이 날 정도로 과감하게 찍어친 뒤 잔디를 다시 제자리에 놓고 발로 밟아주면 풀은 다시 살아난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골프장 측에서 그린키퍼들에게도 라운드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그린키퍼들이 골프를 알아야 손님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허씨도 일주일에 한두 차례 라운드를 한다. 주로 마지막 팀이 나간 뒤 그린을 점검하기 위해 라운드에 나서는 것이다. 허씨에게 봄철 라운드 요령을 물어봤다.

그는 “4월에는 잔디가 빨리 자라지 않는다. 잔디가 가장 빨리 자라는 5~6월에 비해 그린 스피드가 빠른 편”이라고 말했다. 허씨는 또 “그린에 올라가기 전 배수구나 그린 주변을 살펴보는 것도 퍼팅을 잘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귀띔했다. 잔디는 물이 있는 방향으로 자라게 마련인데 그린 주변에 배수구가 있다면 잔디는 그쪽을 향해 누워 있다는 설명이다.

허씨는 “간혹 잔디에 담배를 눌러 끄거나 꽁초를 버리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날 지경”이라며 “골퍼들이 조금만 더 잔디를 아껴준다면 다른 사람들도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주=문승진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그린키퍼(greenskeeper)=골프장의 코스 관리를 도맡는 사람을 부르는 말. 주로 그린의 잔디를 관리하며, 그린 스피드를 적절하게 맞추는 일을 한다. 국내 골프장의 경우 보통 18홀을 기준으로 그린키퍼들이 평균 10~12명 정도 있다. 전국 300여 개 골프장을 기준으로는 약 4000명 내외의 그린 키퍼들이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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