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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신문의 날 … WP 주필 하이엇에게 신문의 길 묻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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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백악관·의회·국무부 등 미국 워싱턴 정가는 매일 아침 똑같은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워싱턴 포스트(WP)의 사설을 살피는 일이다. 그들은 리비아 사태, 미국 내 예산전쟁 등 국내외 주요 현안에 대해 WP 사설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주목한다. WP 사설이 권위가 있기 때문이다. 그 권위는 미국인들이 WP의 주장을 ‘공정하고 사려 깊다’고 생각하는 데서 나온다.

WP의 사설과 오피니언 페이지를 책임지고 있는 프레드 하이엇(Fred Hiatt·56.사진) 주필은 “디지털 시대를 맞아 곳곳에서 주장이 넘쳐나지만 역설적으로 권위 있는 정론에 대한갈증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7일 신문의 날을 기념해 하이엇 주필을 인터뷰했다. 지난달 29일 방문한 그의 사무실엔 때마침 창문너머로 시위대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신문은 인터넷·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필요한 것인가.

 “신문이 지금보다 더 중요한 때는 없었다. 인터넷·케이블TV 등에선 의견이 넘쳐난다.그러나 역설적으로 품격 높은 주장에 대한 수요는 더욱 커지고 있다. 재정적 이익이나 정치적 목적 등을 숨긴 채 한쪽으로 치우치고 편협된 의견 말고 권위 있는 정론 말이다.”

 -신문의 사설·오피니언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뜻인가.

 “확실히 그렇다. 최근 미국에서도 야유와 비방 섞인 고함과 고성이 늘고 있다. 이럴수록 사려 깊고 권위 있는 의견에 대한 수요는 많아진다. 복잡한 현안의 한 면만 보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논쟁의 장을 이끌고 잘 정돈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WP 사설은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나.

 “10명의 논설위원이 매일 아침 1시간가량 대화를 나누며 주제와 방향을 정한다. 논쟁이 자주 벌어진다. 예컨대 일본이 쓰나미 피해를 잘 극복하기 바란다는 내용은 합의하기 쉽다.

그러나 앞으로 원자력을 어떻게 이용할 것이냐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위원들 간에 합의가 안 될 경우는.

 “상호 비난의 수준으로 내려가는 일이 없도록 노력한다.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우 리 WP의 기본 철학에 비춰 보는 것이다. 전세계 민주주의 발전, 공개된 무역, 공평한 과세로의 진전 등이 그것이다. 둘째, 과거 우리의 사설이 어떤 입장을 견지했는지 살핀다.물론 입장을 바꿀 수도 있다. 그때는 우리가 왜 입장을 바꾸었는지 명확하게 설명한다. 이를 회피하거나 감추려는 일은 결단코 없다. 마지막이 논설위원들의 독자적인 취재다. 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직접 인터뷰하고 취재하는지를 알게 되면 모두 깜짝 놀랄 거다.”

 -디지털 매체의 등장으로 종이 신문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이 많다.

 “컴퓨터·태블릿·휴대전화 등으로 WP를 찾는 사람도 생겨 독자는 늘었다. 본질적으로중요한 것은 플랫폼에 상관없이 최고의 품격을 갖춘 콘텐트다.”

 -WP 사설의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사설은 하나의 ‘독립된 신문’이다. 정당이나 정치인 그 누구를 지지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않고, 오로지 사안의 시비곡직(是非曲直·도리에 맞는 것과 어긋나는 것)에 따라 판단할 뿐이다. 요즘 워싱턴이 더욱 당파적으로 분열되고 있다. 이를 배척하고 합리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 이게 다른 신문들과 다를 수 있다.”

 -당신에게 좋은 신문이란 어떤 것인가.

 “새로운 사실을 정확히 알리면서도 흥미 위주의 접근에 빠지지 않는 신문이다. 그래야 독자들이 기꺼이 돈을 지불할 수 있는 가치 있는 방식을 찾을 수 있다. 편집과 경영의 분리도 중요하다. WP의 광고 담당자가 한 번도 나를 찾아온 일이 없다.”

 -도쿄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한국을 취재한 적도 있었는데.

 “1987년 6월 한국의 민주화 현장을 취재하다 최루탄 파편을 다리에 맞고 내가 기자임을 실감했다. 독재국가가 민주국가로 전환하는 과정을 지켜본 경험은 내게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의 이집트 사태에서도 그때를 떠올린다.”

 -언론인이 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해줄 수 있을까.

 “아직도 기자가 될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공권력의 남용을 감시하는 자유언론의 중요성은 영원하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프레드 하이엇=미국 워싱턴 출신으로 하버드대를 나와 곧바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1981년 워싱턴 포스트에 합류한 뒤 87~90년 도쿄 특파원을 지냈다. 2000년 이래 11년째 WP의 사설·오피니언 페이지를 책임지고 있다. 2주에 한번 칼럼도 쓴다. 하버드대에서 만난 부인 마거릿 샤피로도WP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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