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린’ 영혼의 우주 비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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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 ‘유리 가가린’호를 실은 소유스-FG로켓이 5일(현지시간) 새벽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발사되고 있다. [바이코누르 AP=연합뉴스]


1968년 3월 27일 소련 키르자치 근교. 2인승 미그-15기 한 대가 추락했다. 숨진 조종사 두 명은 유리 가가린과 블라디미르 세르요긴. 61년 첫 우주 비행에 성공한 ‘인류 최초의 우주인’과 그의 비행 교관이었다. 당시 가가린은 다시 우주 비행에 나서기 위해 훈련을 받던 중이었다. 그의 나이 34세였다.

 그로부터 43년. 가가린의 못 다 이룬 꿈이 현실이 됐다. 소련의 뒤를 이은 러시아의 우주항공국은 5일 오전 2시18분(현지시간)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유리 가가린’ 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됐다고 밝혔다.

 우주선의 공식 명칭은 소유스 TMA-21. 하지만 러 우주항공국은 12일로 50주년을 맞는 가가린의 첫 우주 비행을 기념하기 위해 ‘유리 가가린’ 호란 별칭을 붙였다. 우주선 겉면엔 그의 이름(ГагарИн·가가린)이 큰 글씨로 새겨졌고, 아래쪽은 가가린이 우주복을 입고 활짝 웃는 모습과 그가 우주 비행을 떠나며 외쳤다는 “파예할리(ПоехалИ·‘그래, 가보자’)!”란 문구로 장식됐다.

 AP통신은 “통상 숫자로만 구별돼 온 러시아 우주선에 가가린의 이름이 붙여진 것은 러시아 우주산업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가가린 호에는 러시아 우주인 안드레이 보리셴코(46), 알렉산더 사모쿠티야예프(40)와 함께 미국 우주인 론 개런(49)이 탑승했다. 이들은 이틀 뒤인 7일 미·러와 이탈리아 우주인이 머물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도킹할 예정이다. 50년 전 국력 대결의 상징에서 오늘날 국제 협력의 장으로 변모한 우주 개발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개런은 “50년 전엔 한 나라가 한 사람을 우주로 보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경쟁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3명은 ISS 운영에 참가하고 있는 많은 나라를 대표한다”고 말했다.

 ◆세계를 놀라게 한 108분=가가린은 61년 4월 12일 오전 9시7분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에 도전했다. 5일 ‘유리 가가린’ 호가 발사된 바이코누르 기지에서였다. 그를 태운 우주선 보스토크 1호는 지상 299.2㎞까지 치솟은 뒤 76분에 걸쳐 지구를 한 바퀴 돌고 10시55분 귀환했다.

 소련 공산당 기관지였던 이즈베스티야는 ‘세계를 뒤흔든 108분’이라는 제목으로 이 소식을 전했고 27세 ‘목수의 아들’, 키 1m58cm의 공군 중위 가가린은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60년대 소련에선 아이 이름을 ‘유리’로 짓는 게 유행했고, 그는 세계 30개국을 돌며 그때의 경험을 강연했다. 68년 추락사한 뒤엔 소련의 ‘국가 영웅’들만 묻히는 모스크바 붉은광장의 크렘린궁 외벽 아래에 유골이 안치됐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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