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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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사람 = 김정수 전문위원

"우리경제는 여러가지 수술을 동시에 해야 하는 복합수술을 이제 막 끝냈을 뿐입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소생 여부는 앞으로 회복실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2년 동안의 구조조정 대수술을 끝내고 수술실에서 막 나온 이헌재(李憲宰)금융감독위원장. 수술실의 긴장이 잠시나마 풀려서 일까. 여의도 금융감독위원회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심한 독감에 걸려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느릿느릿하면서도 강단이 있었다.

- 기업.금융 구조조정이 올해로 한 획을 그은 것같습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구조조정 성과에 대한 나라 안팎의 평가는 조금 다른 것같은데, 어떻게 보십니까.
"당사자와 밖에서 보는 사람의 견해가 다른 것은 당연합니다. 매일 운동해온 사람이 4, 5㎞ 등산을 하는 것은 쉽지만 안하던 사람이 갑자기 하려면 다리도 아프고 짜증도 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동안에는 안하던 구조조정을 한번에 몰아서 하려니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이걸 꼭해야 하나 하는 마음도 생기고 또 옆에서 그런 마음을 부추기는 세력도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고비만 넘기면 몸도 건강해지고 기분도 좋아질 겁니다. "

- 그러나 구조조정의 결과 수많은 금융기관.기업의 국유화라는 원치않은 결과가 생긴 것도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관치경제가 되살아나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습니다만.
"그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민영화를 가능한 앞당길 생각입니다. 관료 입장에선 국유화 상태를 가급적 오래 끌어 1백원 넣고 1백50원이나 2백원 회수했다는 말을 듣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러나 공적자금 회수는 정부가 해당 기업을 팔아 받는 대금만 따져서는 안됩니다. 국영기업이나 금융기관으로 장기간 운영되면서 생길 비효율성이란 비용까지 감안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비용까지 생각한다면 욕을 먹더라도 민영화는 앞당겨야 합니다. "

- 민영화를 위한 일정은 있습니까.
"투자신탁처럼 시장중개기관은 정상화되는대로 즉시 민영화할 생각입니다. 대한투신은 내년 3월 코스닥시장에 등록할 예정이고 한국투신도 곧이어 등록할 것입니다. 투신사가 국영기업으로 남게 되면 정부가 주가나 금리에 개입한다는 의심만 받고, 정부가 가만히 있어도 업계에서 이 회사들의 움직임에 쓸데없이 촉각을 곤두세울 수 있습니다. 한빛.조흥은행이나 대한생명 등 일시적으로 국영화된 금융기관은 내년 상반기까지 민영화계획을 확정토록 하고, 하반기부터는 이를 실천에 옮기도록 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남는 서울.제일은행은 이미 외국인이 경영을 맡게 되는 등 경영구조가 바뀌게 되기 때문에 기업가치가 충분히 높아진 뒤 비싼 값을 받고 팔아도 됩니다. "

- 기업 구조조정으로 화제를 돌려 보겠습니다. 중앙일보 기획취재팀이 다루기도 했지만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 당초 기대만큼 제기능을 못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워크아웃이 지지부진했던 원인 가운데 하나는 은행과 기업간의 해묵은 유착관계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금감원이 기업구조조정위를 통해 워크아웃에 개입할 것입니다. 은행들이 자기 손으로는 할 수 없으니 기업구조조정위를 통해서라도 청산하거나 법정관리 할 곳은 빨리 정리하고 추가 지원이 필요한 곳은 신속히 도움을 주도록 할 작정입니다. "

- 그 방침은 워크아웃 업체 말고 화의나 법정관리에 들어간 업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인가요.
"그렇습니다. 법정관리나 화의를 신청한 업체들에 대해서도 1차 분류작업이 마무리돼갑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곳은 은행들이 법정관리나 화의에 동의해주지 못하도록 해 곧바로 파산이나 청산 절차에 들어가도록 할 방침입니다. 기업정리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을 악용해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기업은 앞으로 발본색원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엔 재벌그룹 계열사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

- 내년 구상을 좀 밝혀주시죠.
"올해까지는 시장에 참여하는 플레이어에 대한 구조조정이었다면 내년부터는 이 플레이어들이 경기를 잘하도록 운동장, 즉 시장을 개혁하는데 중점을 둘 생각입니다. 예컨대 코스닥시장만 해도 증권업협회를 통해 관주도로 만든 시장이었습니다. 이러다보니 시장이 일부 집단의 이익단체 성격을 갖게 됐습니다. 앞으로 이런 시장은 경쟁시장으로 탈바꿈시키겠습니다. 이익단체들의 저항으로 이것이 여의치 않다면 기존시장을 대체할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것도 고려할 생각입니다. "

- 시장이 제기능을 하도록 하자면 플레이어들에게 채워진 족쇄도 풀어줘야 할 것같습니다. 업무영역에 대한 제한이 그런 족쇄인 것같은데 이에 대한 복안은 있습니까.
"좋은 지적입니다. 내년부터는 업무영역에 대한 제한을 금융권별로 은행은 예금업무, 증권은 증권중개(브로커)업무, 보험은 인수업무만을 핵심업무로 하고 나머지는 모두 터줄 생각입니다. 예컨대 현재 종합금융은 증권사와 합병해도 3년동안만 단기수신 업무를 할 수 있는데, 앞으로는 이런 제한을 없앨 예정입니다. 이럴 경우 종금사와 증권사가 합병해 투자은행으로 탈바꿈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날 겁니다. 은행과 증권사가 업무제휴를 통해 채권투자펀드를 만든 뒤 상품개발은 증권사가 맡고 돈과 판매망은 은행이 대며 운용은 투신사가 하는 형태의 업무영역 파괴도 나올 것입니다. "

- 최근 뮤추얼펀드들이 속속 만기가 돼 청산되면서 개방형 뮤추얼펀드의 도입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고 있습니다.
"개방형 뮤추얼펀드는 미국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어요. 시장에 외부 충격이 가해졌을 때 폐쇄형은 곧바로 돈을 찾을 수 없다는 완충장치가 있지만 개방형은 곧바로 뱅크런으로 이어져 시장이 마비되는 사태로 번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개방형을 무턱대고 도입할 게 아니라 폐쇄형의 단점을 보완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이를 위해 내년부터 뮤추얼펀드의 중간배당을 허용해줄 계획입니다. 또 뮤추얼펀드를 거래소나 코스닥시장에 상장.등록토록 요건을 완화해주고 필요하다면 뮤추얼펀드 거래 전용 장외시장도 만들 방침입니다. 여기에 맞춰 현재 1년인 뮤추얼펀드의 만기도 2, 3년 등으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할 겁니다. "

- 대우처리 문제가 해외채권단과 협상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대우의 법정관리 불가피설이 다시 나오고 있는데 이로 인한 충격은 없을까요.
"대우사태에서 가장 풀기 어려웠던 문제는 금융기관 부채보다는 시장부채가 많았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미 해결됐습니다. 대우그룹 전체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도 괜찮았던 시장이 ㈜대우 하나가 법정관리에 들어간다고 갑자기 흔들리겠습니까. 따라서 그동안 부담을 질 만큼 진 바에는 해외채권단에 대해서도 국내외 동등대우 원칙을 반드시 관철시킬 생각입니다. 이번 기회에 이 원칙을 세워놓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 밀릴 수 밖에 없습니다. 해외채권단과 협상은 가능하면 올해안에 끝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긴 시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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