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의 전쟁사로 본 투자전략] 한국전쟁 중공군 인해전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2면

1950년 겨울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엔군에 시련의 계절이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당해낼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령처럼 나타나 나팔을 불고 꽹과리를 치며 진지를 습격했다.

 공포에 질린 유엔군 병사의 눈에 중공군은 무한한 병력을 가진 불사신 같았다. 어둠 속에서 중공군의 나팔소리만 들려도 유엔군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유엔군은 결국 무수한 장비와 병력을 잃었다. 수도 서울마저 내주며 후퇴를 거듭했다. 가까스로 전선을 수습한 뒤에도 중공군은 절대적인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유엔군이 조직적인 방어선을 구축한 51년 봄이 되면서 중공군의 실체가 드러났다. 신념에 찬 불사신은커녕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징집병에 불과했던 것이다.

압록강에서 38선까지 이어진 중공군의 보급선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그들의 보급 상태도 형편없었다. 중공군의 실체를 간파한 유엔군에 인해전술이란 허장성세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유엔군은 침착하게 전선을 지키면서 우세한 화력으로 대응했다. 중공군은 유엔군 방어선에 도전하는 것이 대단히 무모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주식시장만큼 ‘위기’라는 단어가 자주 거론되는 곳도 많지 않다. 2000년 이후만 따져봐도 정보기술(IT) 버블 붕괴와 미국의 9·11 사태, 신용카드 대란, 차이나 쇼크, 글로벌 신용위기 등 여러 위기가 이어졌다. 이때마다 수많은 개인투자자는 위기의 실체가 드러나기도 전에 공포감에 질려 보유한 자산을 다 버리고 도주했다. 위기를 실체보다 부풀려 해석하는 무수한 억측과 가정 앞에서 개인투자자들이 버틸 의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중공군과 맞닥뜨리기 전 피리와 나팔소리만 듣고 공포에 질려 몸을 떨었던 유엔군처럼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위기는 다양한 금융정책과 경기부양을 통해 비교적 원활하게 해결됐다’는 믿음을 가지고 굳건히 자리를 지켰던 투자자는 손실 회복과 추가 이익이라는 혜택을 누렸다.

 일본 대지진 이후 코스피지수가 크게 하락했다. 일본 대지진이 향후 경기와 기업 실적에 미칠 궁극적 영향에 대해 분명한 ‘실체’는 아직 없다. 불안감이 시장을 흔들고 있지만 과거 위기 때와 비교했을 때 이번 위기에 대처하는 국내 투자자의 태도는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불확실한 추측과 관측에 놀라 ‘팔고 쉰다’는 마음으로 도망가기보다 착실하게 시장에 대응하며 오히려 저가 매수 기회를 노리는 투자자들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국내 투자자도 억측과 가정에 흔들리기보다 실체를 주시하며 상황의 반전을 노리는 ‘역전의 베테랑’의 모습을 갖추는 듯하다. 

김도현 삼성증권 프리미엄상담1센터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