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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 ‘개발은 악’이란 낡은 이념 벗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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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환경공학과
한국환경교육학회 회장

20세기 말 서구에서 환경운동 비판론이 일어난다. 1993년 출간된 『환경사기꾼(Eco-Scam)』이 대표적이다. 핵심은 수많은 환경위기론이 실제 일어나지 않았거나 과학적 근거가 없더라는 것이다. 그 여파로 서구의 환경운동은 활력이 크게 줄었다.

 1980년대 태동한 우리의 환경운동은 국민들에게 환경의 소중함을 알리고 국토를 오염과 파괴로부터 지켜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낙선운동·탄핵반대 같은 정치활동이나 환경근본주의적 주장과 무리한 법정투쟁으로 외면당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인천공항·경부고속철도·새만금과 같은 국책사업을 표류시켜 결과적으로 적지 않은 사회경제적 손실을 초래한 것이다.

 인천공항은 지반침하 가능성과 해일·태풍 무방비, 철새의 이동경로임을 내세워 환경단체와 학자들이 극력 반대했다. 하지만 2001년 개항 이후 이들이 제기한 문제점은 발생하지 않았다. 경부고속철도 역시 번번이 공사가 중단된 가운데 환경영향조사가 네 차례나 실시됐다. 도롱뇽 서식지인 습지에 영향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반대론자들은 승복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KTX가 개통됐지만 올봄 천성산에는 도롱뇽 알 천지였다고 한다.

 새만금 방조제는 공사가 60% 완공된 상태에서 환경단체들의 반대로 99년 공사가 중단됐다. 법정공방이 4년7개월을 끌면서 국고낭비와 국론분열을 초래했다. 이를 국민적 합의를 위한 ‘사회비용’으로 치부하기엔 손실이 너무 크다. 최근에는 4대 강 사업 반대다. 법정투쟁에서 모두 정부가 승소했지만 시민환경단체들은 쉽게 승복할 태세가 아니다. 역시 국민에게 피로감만 안길 공산이 크다.

 환경운동은 시민 참여를 통한 건강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개발은 악(惡), 환경은 선(善)’이라는 구시대적 환경이념에서 벗어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세계를 보면 진짜 환경위기의 근원은 ‘가난’이다. 열악한 생활 여건이 각종 환경성 질환과 생태계 파괴를 부른다. 저탄소·자원순환형 사회를 위한 녹색문명 보급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제다. 부강한 환경 선진국을 정착시키는 것은 시대적 사명이자 21세기 환경운동의 실천적 방향인 것이다.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환경공학과 한국환경교육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