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조사 발표 한 달 넘게 질질 끄는 정부,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그야말로 감감무소식이다. 1월 말 정부가 꾸린 기름값 태스크포스(TF) 얘기다. TF는 정유사가 폭리를 취하는 부분이 없는지 파헤치려고 만들었다. 당초엔 조사 결과를 지난달 말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예정을 한 달 넘긴 지금까지 아무 얘기가 없다. 사정이 뭐기에 정부가 이처럼 발표를 질질 끄는 것일까.

 TF는 정유사가 기름값에서 폭리를 취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를 잡아내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본지가 TF에 연구진으로 참여한 복수의 인사들에게 알아본 결과다. 연구진은 대학 교수 등 모두 8명이었다. 기름값이 과연 비대칭적인지, 가격결정 방식에는 문제가 없는지 분석을 맡았다. 연구진은 “기름값이 비대칭적이라거나 대칭적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다”는 합의를 봤다. 또 현재 정유사들의 가격결정 방식에 대해서도 “하자가 없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번에 조사한 ‘기름값의 비대칭성’이란 ‘국제 유가와 석유제품 값이 오를 땐 정유사들이 번개처럼 휘발유·경유 값을 올리면서, 유가가 떨어질 땐 잘 반영을 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연구진에 참여한 A씨는 “분석 기간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비대칭적이기도 하고 대칭적이기도 해 잘라 말할 수 없다고 연구진 간에 합의를 이뤘다”고 전했다. 앞서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서울대 경제연구소에 의뢰해 기름값을 조사했을 때는 예상과 정반대로 ‘비대칭적이지 않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국제 원유가가 오를 때보다 오히려 떨어질 때 정유사들이 국내 휘발유·경유가에 더 잘 반영해 가격을 많이 낮췄다는 것이다. 당시의 분석 대상 기간은 1997년 1월부터 2008년 11월이었다. <본지 2009년 3월 13일자 e3면>

 이번 조사에서 연구진은 가격결정 방식에서도 정유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현재 정유사는 국제 휘발유·경유 가격에 맞춰 국내 가격을 정하고 있다. 반면 정부 일각에서는 “원료인 원유값에 적정 마진을 더해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원가를 조사하겠다”고 한 이유다. 하지만 ‘원가+적정 마진’ 방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똑같이 원유를 정제해 나오는 휘발유·경유·나프타 등의 값이 다르다는 점이다. 원가는 다 같은데 공장 출고가는 전부 다르다. 심지어 벙커C유는 원료인 원유가보다 싸게 밑지고 판다. <그래픽 참조>

 휘발유·경유·벙커C유 등 제품별로 수요·공급 상황이 다르고 그에 맞춰 시장에서 가격이 정해지다 보니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가격이 바로 국제 제품 가격이며, 국내 정유사들은 여기에 맞춰 가격을 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연구진이었던 C씨는 ‘돼지고기론’을 펼쳤다. “같은 돼지에서 나온 삼겹살·목살·족발·껍데기는 원가가 전부 같은데도 소비자가는 다르다. 휘발유 등도 마찬가지다”는 것이다. 기름값도 원가를 따질 게 아니라 현재 정유사들이 하는 대로 국제 가격에 연동하는 게 맞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지난 12일 최종 회의를 하고, 이런 조사·분석 결과를 정부에 전달했다. 정유업계는 “기름값 폭리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며 반기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지식경제부 등 경제부처 장관들이 직접 나서 조사하겠다고 칼을 뺐는데도 결과가 밋밋해서다. 연세대 박태규(경제학) 교수는 “경제학자들이 엄밀하게 분석해 결론지은 것이라면 정부가 일단 수용하는 게 옳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가격 분석과는 별도로 정유사가 주유소와의 거래에서 부당한 요구를 한다든가 하는 점은 공정거래위원회가 파헤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혁주·최현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