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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시 뚫은 선생님의 자존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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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양영유
정책사회 데스크

대학생 때 과외를 한 적이 있다. 고교생을 가르쳤다. 성적이 좋은 팀 녀석들은 힘이 들지 않았다. 방향만 잡아주면 알아서 잘했다. 성적이 오르자 엄마들의 대접이 달라졌다. 과일 하나라도 더 내왔다. 아이들도, 엄마들도, 나도 만족했다. 그런데 공부가 처지는 또 다른 팀 녀석들은 달랐다. 더 열심히 가르쳐도 성과가 나질 않았다. 고민 끝에 중학교 수학부터 다시 공부시켰다. 가능성이 보였다. 하지만 엄마들 눈총이 심해졌다. 결국 포기했다. 지금도 녀석들이 아른거린다.

 남의 자식을 가르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존경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선생님을 ‘국가 건설자(Nation Builder)’라고 칭송한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상한 얘기가 있다. 처음엔 최고였던 선생님 실력이 해를 거듭할수록 떨어진다는 것이다.

채용과정만 놓고 보면 실력은 공립고 교사→사립 일반고·특목고 교사→학원 강사 순이다. 공립 교사들은 대부분 사범대를 나와 평균 20대 1의 교시(敎試)를 뚫었다. 실력이 최강이다. 자부심도 대단하다. 반면 사립고와 특목고 교사는 2부 리그라 할 수 있다. 임용고시에 실패한 이들이 많다. 채용과정은 물론 깐깐하다. 학원 강사는 어떤가. 교사자격증은 고사하고 전문대졸이 자격 기준이다. 교육학을 한 줄도 읽지 않은 이들이 태반이다. 교육계에선 3부 리그다.

 그런데 현실은 엉뚱하다. 세 리그의 실력이 학원 강사→사립 일반고·특목고 교사→공립고 교사 순으로 역전된다. 성역인 ‘실력’ 문제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불경(不敬)인 줄 안다. 선생님들, 특히 공립고 분들이 발끈하실 테다. 무슨 근거로 모욕을 주느냐고. 어느 고교 설립자가 이런 말을 했다. “교사들에게 수능 문제를 풀게 했더니 80점을 못 넘더라.” 깜짝 놀랐다. 수능 날, 전광석화(電光石火)로 문제를 풀어 분석을 해내는 학원 강사들이 떠올랐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다. 온갖 잡무에, 많은 수업에, 진로지도에 파김치가 된 선생님들과 상업적인 학원 강사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송구스럽다.

 일반고 선생님들은 정말 힘들다. 아이들 출발선이 다른데 결과만 평가하니 억울하실 게다. 우수 학생이 몰려 있는 특목고는 가르치기도, 성과를 내기도 유리하다. 전국의 고3 가운데 96%가 일반고 1460여 곳에서 공부한다. 교사들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그런데 근거도 없이 실력을 들먹였으니 거듭 죄송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자. 초력(初力)을 유지하면 공립고 교사들은 계속 최강이 될 수 있다. 수강생 숫자를 돈으로 생각하는 학원 강사는 명함도 못 내민다. 문제는 분위기다. 4~5년마다 학교를 옮기니 애교심이 부족하다. 이사장과 교장이 들들 볶는 사립학교보다 경쟁도 덜하다. 아이들을 쉽게 포기한다. 그런 분위기가 실력을 녹슬게 한다. 선생님들이 되짚어 봐야 할 2011년 봄이다. 공립학교 선생님들, 임용고시 합격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양영유 정책사회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