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일본은 과연 다시 일어설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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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지난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2주일이 지났다. 언론과 연구기관들은 대지진의 경제적 영향을 분석하는 데 바쁜 모습이다. 지진에 뒤이은 방사능 누출이 여전히 긴박한 상황에서 경제적 영향을 논하는 것 자체가 시기상조일 수도 있지만, 워낙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 있다 보니 여러 각도에서 여러 종류의 전망이 나오고 있다. 부정적 전망도 있고, 곧 괜찮아질 것이라는 긍정적 견해도 있다. 혼란스러운 전망들이지만 영향이 미치는 시간대를 순차적으로 보면 대체적인 윤곽은 추려낼 수 있다.

 우선 앞으로 몇 달간의 초단기 전망은 당연히 부정적이다. 세계은행은 이번 지진의 피해 규모가 1995년 고베 대지진보다 약 10배 더 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이 국내총생산(GDP)의 약 3~4%에 달하는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추산도 있다.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주로 글로벌 부품 공급망의 교란에서 일어난다. 당장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의 20%를 담당하는 일본으로부터 부품을 공급받는 각국의 전자업계가 타격을 입고 있다. 또 각국의 자동차·항공기 산업도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번 대지진의 여파로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0.5%포인트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 영향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낙관적 전망의 근거는 ‘재해는 강력한 복구 수요를 일으켜 경제성장에 오히려 도움을 주더라’는 경험적 관측이다. 예컨대 89년 샌프란시스코의 지진이나 95년 고베 대지진 때도 경제적 타격은 불과 몇 달에 그치고 이내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또 국제통화기금(IMF)은 일본 정부가 복구에 드는 비용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재정 능력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약 1년 후면 수입은 지진 이전 상태로 돌아갈 것이며 수출은 80% 수준까지 회복될 것”이라고 하고 있다(세계은행 전망). 요컨대 재해로 경제가 일시적으로 타격을 입겠지만 복구 수요의 증대로 곧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렇다면 경제에 미치는 충격파가 진정된 뒤에 일본 경제는 과거의 위치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낙관론의 입장에서는 이번 사태가 일본인들이 특유의 집단적 응집력을 회복하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 그래서 다 함께 힘을 합쳐 일본경제가 새로운 도약기를 맞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이번 대지진은 지나가는 여러 사건 중 하나가 아니라 시대를 가르는 전환점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반복적인 지진과 방사능 유출에 따른 공포가 예전에는 없던 것이며,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방사능에 대한 공포는 일본인들의 소비를 비롯한 경제활동 의욕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다. 되풀이되는 지진 위협과 함께 방사능 공포로 인한 생산과 소비 위축이 지속되면 복구 수요에 따른 경제회복은 단기에 멈추고 일본 경제는 다시 긴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 수 있다.

 보다 심각한 것은 위기에서 일본인들을 묶어줄 중심 그룹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찍이 일본의 근대화 뒤에는 사무라이라는 중심 그룹이 있었고, 제2차 세계대전 패망 이후 일궈낸 빠른 재건의 뒤에는 엘리트 관료 그룹이 있었다. 이들이 만든 매뉴얼에 따라 국민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임으로써 힘을 얻었다. 그러나 합리적 예측을 뛰어넘는 의외성과 복잡성이 뒤얽힌 사건들이 연이어 터짐에 따라 매뉴얼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관료에 대한 신뢰도 무너졌다.

 일본이 어려워지면 한국이나 중국에도 좋을 것이 없다. 한·중·일 삼국은 경제적으로 상당히 통합돼 있어 한쪽 축이 무너지면 나머지 축들도 큰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본이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일본 기업들을 한국으로 모실 수 있도록 기업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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