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성에게 일본의 길 묻다 ③ 오가와 가즈히사 국제변동연구소 이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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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 발생한 초유의 대지진과 쓰나미에 따른 일본의 피해규모는 사망자·실종자가 최소 2만7000여 명, 이재민 수는 50여만 명에 이른다. 대지진 발생 직후 일 정부의 위기관리시스템은 어떻게 작용했을까. 22일 일본의 대표적인 군사분석가인 오가와 가즈히사(小川和久·65) 국제변동연구소 이사장을 만나 자연재해에 대비해 일본이 구축해야 할 위기관리 체제의 방향을 들어봤다.

-동일본 대지진 발생 직후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가장 먼저 “자위대 5만 병력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동원된 자위대 병력은 모두 10만 명이 넘는다. 간 총리의 긴급대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소방과 경찰은 육상경기에 비하면 단거리선수다. 전국 어느 곳에나 배치돼 있다. 이에 비해 군사조직, 군대는 마라톤 선수와 같다. 어디에나 주둔하는 존재가 아니다. 주둔지에서 피해지역이 멀면 멀수록 도착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중앙정부의 지시가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는 조직이기도 하다. 간 총리가 맨 처음 5만이라고 말한 것은 상당한 결단을 내린 것이고,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자위대뿐 아니라 현지의 인적자원 예컨대 소방·경찰·지자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또 필요한 구호물자를 적확하게 어디에 어느 정도 투입해야 하는지를 판단할 사령탑이 존재하지 않았다.”

 -중앙에서 일괄해 지휘하는 시스템이 없었다는 말인가.

 “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2006년 9월~2007년 9월 재임) 총리 시절, 총리관저의 국가안보에 관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관저기능강화회의’의 위원으로 활동하며 국가안보회의(NSC)와 위기관리청(FEMA)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관료의 90% 이상은 현 시스템으로도 재해나 전쟁에 대비할 수 있다고 정치인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한 분야에 전문가라도 재해나 전쟁 현장에 있으면 아무 생각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여러 분야에 걸쳐 지식을 갖춘 사람이 재해지역에서 떨어진 곳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다. 이번에도 각 분야 전문가 10명 정도의 사령탑을 구성했다면 보다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10명은 어떤 사람들인가.

 “리더는 경찰·소방·지자체 등에 관한 정보를 갖고 있는 위기관리통이어야 한다. 육·해·공 자위대와 경찰·소방·해상보안청·총무성·농림수산성·국토교통성·후생노동성 등에서 과장급 엘리트를 선발하는 게 좋다.”

 -간 내각이 초기대응에서 실수한 부분이 있다면.

 “있는 인력도 제대로 동원하지 못하고 놀렸다는 점이다. 웬만한 피해지역은 인공위성이나 정찰기로 파악이 가능하다. 총리관저의 사령팀은 지진 발생 직후 육상자위대의 OH-6 소형헬기 20기 정도를 피해지역 상공에 띄워 정보를 수집했어야 했다. 이를 통해 재해주민 규모를 파악하고 이들을 도울 육상자위대원과 의료진·의약품·구호물자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구체적으로 판단하고 곧바로 지시를 내렸어야 한다. 그 다음엔 육상자위대의 대형헬기 CH-47 6기를 재해지역으로 왕복시키면 일본 어느 지역이든 2~3시간 안에 병력을 투입할 수 있다. CH-47에는 55개의 좌석이 있지만 비상시엔 이를 제거하고 모두 서서 출동하므로 1기에 125명씩 실어나를 수 있다.”

 -지진 발생 일주일이 지나도록 재해지역에 구호물자가 제대로 도착하지 않았는데.

 “근대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반적인 현황 파악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자위대(병력)도, 민간(기업·구호물자 제공)도 능력이 있었는데 풀가동하지 못했다. 육상자위대의 경우 250기의 헬기가 있지만 그중 절반은 움직이지 못했다. 원자력발전소의 대량살수 작업도 마찬가지다. 이미 지진 발생 다음 날인 12일 최정예 소방부대인 도쿄소방청의 소방구조 기동부대인 하이퍼레스큐가 현지에 들어가려 했으나 방사능 대비 장비를 갖추지 못해 보류됐다. 결국 18일에야 뒤늦게 현장에 들어갔다. 정부는 (핵대응 능력이 있는) 자위대에 지원을 지시하고 헬기로 이들을 현지에 투입했어야 했다. 도쿄소방청은 헬기가 6기밖에 없다. 정부는 정보가 올라오길 기다려선 안 된다. 사태가 나자마자 자위대를 비롯한 전문가들을 모으고 정보를 수집해 이를 바탕으로 즉각 대응책을 지시할 수 있어야 한다.”

 -간 총리가 앞으로 어떻게 위기국면을 수습해야 할까.

 “총리가 유연한 자세로 정책을 펴야 한다.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대지진’에 대비할 수 있는 위기관리 사령탑을 구축해야 한다. 복원과 함께 앞으로 있을 재해에 대비하는, 그리고 일본의 국가 만들기를 할 만한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오가와 가즈히사 국제변동연구소 이사장=1945년 일본 구마모토(熊本)현 야쓰시로(八代) 출생. 육상자위대 생도교육대 항공학교 수료. 도시샤(同志社)대 신학부 중퇴. 신문기자 등을 거쳐 84년부터 군사분석가로 활동하고 있다. 아베 내각 당시 위기관리연구회 위원을 지냈고, 현재 총무성 소방심의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일본의 전쟁력』 『일본의 전쟁력 vs 북한 중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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