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당신] 방사선 오염 검사기, 강원·충북·전북에는 1대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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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구조 및 지원을 끝마치고 23일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한 긴급구조대원들이 서울 노원구 공릉동 한국원자력의학원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에서 오염 검사를 받고 있다. [김도훈 기자]


우리나라에서도 원전 사고가 일어날까. 인공 방사선 노출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우리라고 예외는 아니다. 방사성 물질을 생산하고 사용하는 기관이 많다. 의료기관은 물론 선박이나 건물의 안전성 여부를 분석하는 비파괴검사 사업체도 상당수다. 한국원자력의학원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 이승숙 센터장은 “우리나라도 방사성 물질로부터 100%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만약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우리의 방재시스템은 과연 국민의 건강을 지켜줄 수 있을까.

비상진료기관 21곳, 지원예산도 21억뿐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방사선 관련 재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우리나라 비상진료체계는 잘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무늬는 만점일지 몰라도 지원 현황을 보면 아직 개선할 부분이 많다. 지난해 방사선 비상진료기관 예산은 총 21억원. 방사선 관련기기를 구입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제외하면 사실상 전국 21개의 비상진료기관은 각각 1500만~1700만원(2011년 기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비용은 방사선 비상진료요원의 매년 의무교육(신규교육 18시간, 보수교육 6시간)과 6번의 훈련에 지출되면 남지 않는다.

 진료기관마다 당연히 있어야 할 문(門) 모양의 검사기도 전국 방사선비상진료기관에 총 8대밖에 없다. 특히 강원도, 충북, 전북 지역 의료기관에는 단 한 대도 없다. 4억원 정도 하는 전신 계측기는 의료기관 중 2군데만 있다. 일본 원전 사고와 같이 일시에 방사성 물질에 노출된 사람이 발생할 경우 지금의 준비만으로 미흡한 것이다.

오염 발생 땐 백색→청색→적색비상

우리나라 비상진료체계는 크게 3단계로 운영된다. 방사선 영향이 원자력 건물 내에서만 발생하면 백색비상, 원자력 시설 부지로 확대되면 청색비상이 발동된다. 가장 심각한 단계인 적색비상은 방사선 영향이 원자력 시설 부지 밖으로 확대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일본 원전 상황과 같아지는 것. 이 단계까지 가면 정부는 사고 주변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갑상선암 예방약 복용 여부를 판단한다. 피폭 정도에 따라 치료 가능한 의료기관으로 환자를 분산해 후송하는 합동방사선 비상진료체계도 가동된다.

  비상진료요원 397명이 즉시 소집되고, 방사능 계측장비 452대도 오염 지역으로 투입된다. 현재 준비된 인력과 장비는 1987년 브라질 고이아니아 사고를 기준으로 구성됐다. 이 사고는 당시 오래된 암 전문병원을 폐쇄하는 과정에서 방사성 물질이 누출돼 249명의 피폭자가 생긴 대형 방사선 사고. 체르노빌 다음으로 피해가 컸던 당시 사고로 12만 명이 오염 여부 검사를 받았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비상진료요원은 발 빠르게 움직인다. 기준치 이상의 방사성 물질에 노출된 사람은 옷이나 물건에 묻은 방사성 물질을 씻어내는 제염과정을 거친다. 화상과 관련된 응급처치도 함께 이뤄진다. 한국수력원자력 방사선보건연구원 채민정 비상의료팀 부장(핵의학과 전문의)은 “이 시기에는 얼마나 피폭됐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소변을 채취해 방사선 계측실에 분석을 의뢰한다”고 말했다.


오염 확산 방지 위해 치료실 비닐 깔아야

비상진료 지정병원은 환자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응급실 일부 구역을 비워 방사능 오염구역으로 지정하고 치료실 내부에 비닐을 깐다. 구급차는 오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바닥과 벽면·천장을 비닐로 덮는다. 채민정 부장은 “오염 확산 방지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보통 비닐로 환자 주변을 감싼다”며 “혹시나 접촉에 의해 방사성 물질에 오염되더라도 비닐만 거두면 확산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환자로부터 나온 옷, 물품도 수거해 폐기 처분한다.

 이후 환자는 내부 오염에 대한 정밀검사와 치료를 위해 시설이 갖춰진 한국원자력의학원이나 방사선보건연구원으로 이송된다. 이곳에서 전신 계측기를 통해 방사성 물질의 종류, 방사선에 얼마나 노출됐는지 정확히 측정한다. 모든 치료과정이 끝나면 환자는 격리병실에서 몸 안의 방사성 물질이 기준치 이하로 나올 때까지 머무른다. 현재 한국원자력의학원에 13개의 납으로 차폐한 격리병실이 마련돼 있다. 중앙대병원 핵의학과 석주원 교수는 “갑상선암 치료 후 환자가 2~3일 정도 격리실에 있다가 퇴원하는 것과 동일한 원리로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갑상선암 치료를 위해 의료진은 보통 방사성 요오드를 몸에 주입한다. 일정 수준 이하로 방사능 수치가 떨어져야 퇴원이 가능하다.

글=권병준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재난 시 투입되는 방사능 계측장비=옷에 부착되어 피폭 정도를 알려주는 ‘전자개인선량계’, 어떤 방사성 물질에 노출됐는지 알려주는 ‘휴대용핵종분석기’, 피폭자가 대량으로 발생했을 때 오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이동식 문형감시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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