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K 의혹’ 에리카 김, 재판 안 넘기고 수사 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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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007년 대통령선거 당시 동생 김경준(45)씨와 함께 ‘BBK 의혹’을 제기했던 에리카 김(47)씨에 대해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 검찰이 이번 수사를 통해 ‘이명박 당시 후보가 BBK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은 근거 없는 낭설’이란 2007~2008년 검찰·특검수사 결과를 재확인함으로써 이른바 BBK 사건은 모두 마무리됐다. 그러나 ‘기획 입국’ 의혹이 불식되지 않은 가운데 김씨가 면죄부를 받는 모양새로 수사가 끝나 논란이 예상된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이동열)는 에리카 김씨의 횡령 혐의가 인정되지만 기소유예 처분했다고 21일 밝혔다. 김씨의 혐의는 ▶허위사실 공표(선거법 위반) ▶주가 조작(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및 증권거래법 위반) ▶옵셔널벤처스 법인 자금 횡령 등 세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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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은 이 가운데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와 관련한 허위사실을 퍼뜨린 혐의(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해 불기소 처분했다. 김씨는 대선을 앞둔 2007년 11월 ‘이 후보가 BBK 주식 100%를 매각한다’는 내용의 허위 이면계약서를 언론에 공개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미국 현지에서 저지른 다른 범죄로 3년6개월간 가택연금 처분을 받아 귀국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2009년 6월 공소시효 기간을 넘겼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윤갑근 3차장검사는 “지난달 가택연금이 끝난 김씨가 국내에 들어와 검찰 조사에서 ‘동생의 간곡한 부탁을 받았고, 대선 정국에서 의혹을 폭로하면 동생의 수사·재판에서 정치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잘못을 저질렀다’고 자백했지만 결국 공소권 없음 처분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검찰은 투자회사 옵셔널벤처스의 주가를 조작한 혐의에 대해서도 공소권 없음 결정을 했다. 수사팀은 “주가 조작이 이뤄지던 당시 미국에 머물던 김씨가 관련 주문 과정들을 실제 알았다고 볼 근거가 없고, 공소시효도 지난해 만료됐다”고 했다.

 검찰은 유일하게 공소시효가 남은 옵셔널벤처스 자금 횡령 혐의 역시 기소하지 않았다. 검찰은 김씨가 회사 자금 319억원을 횡령하는 과정에 가담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횡령액 중 40억원으로 미국 베벌리힐스에 주택을 구입한 것을 비롯해 50억원가량을 김씨 개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검찰은 김씨에 대해 기소유예 결정을 내렸다. 윤 차장검사는 “범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고 동생 경준씨가 미국과 한국에서 모두 11년6개월을 복역하는 점, 미국 현지 소송에서 패소해 배상책임 금액 대부분이 압류된 상황인 점 등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검찰, 기소 시기 놓쳐=검찰은 그동안 가택연금 중이던 에리카 김씨에 대해 미국 사법 당국에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지 않았다. 결국 조사 과정에서 “BBK 문건이 허위란 것을 알았다”는 김씨의 자백을 받고도 공소시효 만료에 묶여 기소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실제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더라도 기존 사례로 볼 때 공소시효 만료 전까지 김씨가 국내로 들어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것으로 봤다”고 해명했다.

최선욱 기자

◆기소유예=검사가 피의자의 혐의는 인정하지만 여러 정황을 참작해 재판에 넘기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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