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새벽 - 리비아 공습] 사르코지, 1999년 세르비아 폭격 주도한 블레어 연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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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코지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Nicolas Sarkozy· 56) 프랑스 대통령이 리비아 사태를 맞아 국제사회 지도자로서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 주고 있다. 사르코지는 19일(현지시간) 파리의 엘리제궁 현관 앞에서 승용차에서 내리는 22명의 주요국 대표와 국제기구 수장들을 한 사람씩 차례로 맞이했다. 그가 전날 긴급 제안한 파리정상회의에 참가한 손님들이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 등이 그의 손에 이끌려 속속 회의장으로 입장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회의 시작 직후 사르코지는 “프랑스의 군사작전이 곧 개시된다. 현재 리비아 영공에 프랑스 공군기가 떠 있다”고 말했다. 미국·영국 등 프랑스와 군사작전을 협의해 온 국가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 대표들은 순간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은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외신들은 이미 리비아 상공에서 프랑스 정찰기가 목격됐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수시간 뒤 프랑스의 미라주 전폭기 편대가 벵가지 외곽의 카다피군 탱크와 장갑차를 공격했다. 사르코지가 연합군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프랑스 언론들은 사르코지의 단호하고 발 빠른 움직임의 뒤에는 내년 대선에서의 재선을 의식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카다피 측은 16일 “사르코지에게 제공한 정치자금 내역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해 그의 분노와 결단을 불렀다.

사르코지는 정상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나는 역사적 소명을 짊어질 것을 다짐한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올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이다. 프랑스 정치 전문가들은 그가 올해 국제무대를 주름잡으며 프랑스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국내에서 자신의 인기를 끌어올릴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고 있다.

 사르코지의 행보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를 연상케 한다. 블레어는 99년 코소보에서 세르비아계의 알바니아계 학살사건이 벌어지자 “21세기를 야만의 상태로 맞이할 수는 없다”며 미국 대통령보다 더 큰 목소리를 냈다. 그 뒤 영국군은 미국과 함께 78일 동안 세르비아를 공습했다. 벵가지를 비롯한 리비아의 ‘해방구’에서는 19일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프랑스 국기를 흔들며 “메르시(고맙습니다), 사르코지”를 외쳤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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