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워런 크리스토퍼 전 미 국무장관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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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1월 9일 김영삼 당시 대통령을 예방한 워런 크리스토퍼 장관. [중앙포토]


미국의 워런 크리스토퍼(Warren Christopher) 전 국무장관이 18일(현지시간) 지병으로 별세했다. 85세.

 크리스토퍼 전 장관의 가족들은 이날 성명을 통해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LA 자택에서 평화롭게 생을 마감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신장암과 방광암에 따른 합병증으로 투병해왔다.

 크리스토퍼는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무장관(1993~1997년),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 국무부 부장관(1977~1981년)으로 활약했다. 그는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미국의 최고위 외교관이었음에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조용한 행보로 유명했다. 그래서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폭격기의 이름을 따 ‘스텔스(Stealth) 장관’으로 불렸다. 크리스토퍼는 생전에 행한 한 연설에서 스스로 “나는 오래 전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더 잘한다는 것을 관찰했다”며 “경청(careful listening)이야말로 나의 비밀 무기였는지 모른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그의 무기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놀라운 성실함이 보태졌다. 크리스토퍼는 장관 시절 이미 60대 후반~70대 초반의 고령이었는데도 전 세계 외교현장을 누볐다. 그가 4년 임기 동안 쌓은 70만4487마일의 비행 기록은 아직까지 신기록으로 남아 있다.

 국무장관으로 그의 머리속을 채웠던 목표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평화’였다. 특히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역할 확대를 통한 중동지역의 평화 구축이 핵심 목표였다. 1993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탄생시킨 오슬로 평화협정,1994년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평화조약, 1995년 보스니아 평화협정 등은 중재와 체결 과정에 모두 크리스토퍼의 손때가 묻은 역사적 사건들이었다. 그는 제1차 북핵 위기, 제네바 북핵 협상, 북한의 강릉 잠수정 침투사건 등 한반도 현안에도 깊숙이 개입하며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1996년 8월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하자 크리스토퍼는 즉각 “모든 당사자가 추가 도발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며 남북 쌍방의 군사행동 자제를 요청했다.

 국무부 부장관으로 일하던 1979년 이란 주재 미 대사관 인질사건이 터지자 52명의 인질 석방 협상에 참여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대통령이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의 훈장인 대통령 자유훈장(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받기도 했다. 카터 대통령은 지난해 발간한 회고록에서 “크리스토퍼는 내가 아는 최고의 공직자였다”고 칭송했다. 노스 다코타에서 태어난 크리스토퍼는 스탠퍼드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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