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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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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정진홍
논설위원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는 ‘역사와 기억의 몽타주’란 부제가 붙은 ‘코리안 랩소디’ 전이 열리고 있다. 랩소디란 음악적 용어를 차용할 만큼 자유분방한 형식 속에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더듬어보겠다는 야심 찬 전시엔 자못 흥미로운 것들이 적잖았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형상화한 박생광의 작품 ‘명성황후’도 그중 하나였다. 붉은 기운 가득한 그 그림을 보니 일본 낭인들에 의해 건청궁에서 시해된 명성황후의 유해가 불에 태워져 그 재가 뿌려졌다는 향원정은 뒤집혀 있고 궁녀들과 병졸들은 미친 듯 오열하는 가운데 정작 소복 차림의 명성황후 자신은 너무나 평온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116년 전 서울 한복판 경복궁 안의 황후 침소에서 자행됐던 일의 기억과 지금 일본을 향한 우리 마음의 손길 사이의 어쩔 수 없는 부정합 때문이었는지 나는 한동안 그 그림 앞에서 상념에 잠겨 움직일 수 없었다.

 #1992년 1월부터 매주 수요일 낮 12시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어김없이 펼쳐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한국정신대문제협의회(정대협)가 함께 펼치는 수요시위는 지난 16일로 961번째였다. 평소엔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구호가 스피커로 울려 나왔겠으나 이날은 참가자 20여 명이 묵념으로 시위를 대신했다. 일본의 각성을 촉구하는 자리가 동일본 대지진으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자리가 된 것이다. 20년째 계속돼 온 수요시위가 추모 모임으로 대체된 것은 95년 고베 대지진에 이어 두 번째다. 특히 이날 피켓에는 ‘재일교포, 일본시민 모두 힘내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거기에 여든네 살의 길원옥 할머니가 한 말이 귓전을 때리고 가슴에 박혔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밉지 않다. (하지만) 이 세상과 바꾼다 해도 내 상처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한·일 공동제작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용길이네 곱창집)’을 봤다. 40여 년 전인 1969년 일본 오사카에서 곱창집으로 생계를 꾸리던 재일동포와 그 주변의 애환 어린 삶을 고스란히 담아낸 이 연극에서 용길(신철진 분)은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끌려갔다 한쪽 팔을 잃은 외팔이다. 종전 후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배편에 먼저 부친 세간을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몽땅 날리고 뒤이어 아내마저 잃은 그는 두 딸을 데리고 역시 딸 하나 딸린 다른 여인과 재혼해 그 사이에서 아들 토키오를 얻었다. 하지만 그 아들이 어렵게 들어간 사립학교에서 재일동포란 이유로 이지메(왕따) 당하다 끝내 분에 못 이겨 지붕에서 떨어져 자살하는 것을 넋 놓고 바라봐야 했던 ‘정말이지 개 같은 운명’의 아버지 용길! 그는 엄연히 돈 주고 산 곱창집 터가 국유지라며 삶의 터전마저 헐어내려는 일본 관청의 철거반원들을 향해 절규한다. “내 팔을, 내 아들을 돌려달라!”고. 하지만 결국 곱창집은 헐리고 큰딸 내외는 북송선을 타고, 작은딸 내외는 남한으로, 그리고 막내딸은 일본인과 결혼해 일본에 남고 자신은 먼저 간 아들을 가슴에 묻은 채 부인과 양로원으로 향하는 용길이. 그가 먹먹해진 가슴으로 마지막에 한 말을 잊지 못하겠다. “어제가 어떤 날이었건 내일은 좋은 날일 거란 생각이 들어!”

 #그렇다. 내일은 좋을 거다. 우리가 일본으로 인해 말로 다 못할 아픔을 겪었지만 그것을 딛고 일어섰듯이 일본은 지금 너희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라. 우리는 기꺼이 도울 것이다. 그러나 잊지는 말자. 그들이 엄청난 대재앙 속에서도 놀랄 만큼 태연했던 것처럼 116년 전 우리의 국모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태연히 베고 불태웠던 것을! 그들이 보여준 눈물겨운 양보와 배려가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에겐 더없는 차별과 멸시였음도! 더욱이 일본은 마땅히 살아야만 한다. 아직 우리에게 진심으로 속을 털어놓고 지난날을 사과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으니깐!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