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설(世說)

일본 재앙은 인류의 재앙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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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법혜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지금 일본은 지진과 쓰나미에 화산 폭발, 원전 폭발까지 겹쳐지는 4중고를 겪고 있다. 열도의 위치 자체가 바뀌어 버린 대충격으로 많은 것이 파괴되고 사라지고 무너졌다. 현지로 달려간 기자들의 보도가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모든 게 현실이다. 거기에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불행의 두려움마저 묻어 있다.

 그러한 현장에서 들려오는 소식 하나가 귀를 잡아당긴다. 일본 국민들의 질서의식이다. 편의점 앞에서, 주유소 앞에서 길고 긴 줄을 서고 순서를 기다리는 그 차분한 질서. 생존자들이 겪어야 할 아픔을 생각하면 그 어떤 상황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터인데 그들은 줄을 서고 기다리고 원망하지 않는다. 슬픔을 이겨내는 그들의 정신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우리도 그럴 것이다.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상황,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우리 국민들도 차가운 질서의식과 뜨거운 양보의 미덕을 발휘할 것이다.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에 ‘이래서야 누가 군대 가겠느냐’는 냉소가 있었지만, 보란 듯이 젊은이들의 해병대 지원이 늘어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 보여주는 일본의 질서의식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나라이기에 건물의 내진 설계와 각종 기반시설의 안전장치는 완벽 수준이라고 말해 왔고, 국민들의 재난 대비 행동요령은 수준 높았다. 지금 일본 국민이 보여주는 질서는 오랜 시간 훈련된 결과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본의 재앙 그 충격과 슬픔 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폭넓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재앙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특히 분명하게 인식해야 할 것은 지금 일본의 재앙은 인류의 재앙이라는 사실이다. 천지가 한 뿌리이고 뭇 생명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지금 일본 국민이 보여주는 저 차분한 질서의식은 인류를 향해 던지는 생생한 가르침이다. 그 엄청난 고통 속에서 온몸으로 생존의 고결함을 역설하는 사람들을 위해 인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답은 어렵지 않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주어야 하고 행동해야 한다. 아무런 행동 없이 그저 바라만 보기에 지금 일본 열도는 너무 아프고 그 아픔은 우리 것이기도 하다.

김법혜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