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에 용돈 다써요" 청소년 통신료 몸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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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金모(45) 씨는 최근 통장에서 1백26만여원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것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한 이동통신업체로 자동이체된 것이다.

확인 결과, 올해 18세인 아들(고3) 이 그동안 몰래 사용해온 휴대폰 이용료를 최근 아버지의 은행계좌에서 결제되도록 한 사실을 알았다.

휴대폰 이용료가 밀려 사용이 정지되자 부친의 통장을 들고가 자동이체를 신청하는 바람에 연체 이용료가 한꺼번에 결제된 것이다.

항의하는 金씨에게 이동통신업체측은 "주민등록번호와 통장번호만 있으면 자동이체를 신청할 수 있으며, 부모도 전화로 자동이체에 동의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고 반박했다.

소비자단체의 도움으로 요금을 환불받은 金씨는 "가입자만 늘리면 그만이라는 이동통신업체도 문제지만 한달 이용료가 40만원이 넘을 정도로 휴대폰을 마구 써댄 아들이 더 기막히다" 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주부 李모(47) 씨 역시 최근 한 이동통신업체와 며칠 동안 승강이를 벌였다.
미성년자인 고교 2학년 딸이 몇 달 전 시내의 한 휴대폰 가두판매점에서 28만원짜리 휴대폰을 구입해 사용하다 이용료까지 연체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李씨는 "부모의 주민등록증을 들고와 계약했으므로 부모가 동의한 것과 같다" 며 해약을 거절하는 업체를 상대로 긴 입씨름 끝에 해약할 수 있었다.

李씨는 "부모의 주민등록증까지 몰래 들고 나가 최신형 휴대폰을 구입한 데 대해 나무랐으나 딸이 ''요즘 휴대폰 없는 아이가 어디 있느냐'' 며 오히려 대들더라" 며 어이없어 했다.

휴대폰.PC통신 등을 이용하는 청소년들이 급증하면서 마구잡이로 사용한 통신비를 감당하지 못해 허덕이는 청소년들이 크게 늘고 있다.

녹색소비자연대가 최근 서울 지역 중.고.대학생 8백1명을 대상으로 통신소비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대부분이 한달 용돈(대학생 평균 20만원, 중.고생 평균 5만원) 의 절반 이상을 휴대폰.무선호출기 사용료 등 통신비로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본인이 부담하는 통신사용료 이외에도 중학생의 85.9%, 고등학생의 71.4% 등 응답자 상당수가 "통신요금의 상당액을 부모가 대신 내주고 있다" 고 대답했다.

과도한 통신비를 내지 못해 체납하는 경우도 많아 전체 응답자의 29.2%, 고등학생은 38.3%가 통신요금 체납을 경험했다고 응답하는 등 통신비가 청소년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를 진행한 녹색소비자연대 김진희(金眞姬) 간사는 "이동통신업체들이 고객 확보에만 치중해 일선 대리점들이 명의 도.차용을 통해 청소년을 고객으로 유치하는 행위를 방관해 결국 청소년들의 통신비 과용을 부추기고 있다" 고 지적했다.

명지대 조아미(趙鵝美.청소년지도학) 교수는 "청소년들의 모방 심리를 자극, 과소비를 부추기는 관련 업체들의 무분별한 상술이 큰 문제"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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