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 공항으로 몰려든 외국인 … 출장 간다며 일본 떠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16일 오후 5시25분. 도쿄 하네다(羽田)공항을 출발해 서울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대한항공 마지막 비행기의 탑승 수속이 시작되자 승객들이 카운터로 일제히 몰려들었다. 순식간에 200m의 줄이 생겼다. 예약을 못한 채 혹시라도 빈자리가 생길까 무작정 공항으로 나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도쿄에 거주하는 한국인 주재원의 가족이 많았다. 40대의 한국인 여성은 “지진은 어느 정도 익숙해 참을 수 있지만 방사능이 날아올 수 있다는 뉴스를 듣고 귀국을 결심했다” 고 말했다.

 여행사를 통한 발권은 이미 대부분 동났다. 덩달아 일본을 빠져나가는 항공권 요금도 치솟고 있다. ‘표 구하기 전쟁’이다. 아시아나항공의 한 관계자는 “도쿄를 빠져나가는 모든 편수가 만석인 데다 무작정 공항에 나와 대기하다가 돌아가는 고객이 매편 수십 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한국행 비행기뿐이 아니었다. 하네다 국제선과 나리타(成田)공항의 모든 창구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미국계 법률사무소에 근무한다는 한 일본인 변호사는 “도쿄에 근무하던 서양인 변호사들은 이미 출장 등을 핑계로 대부분 자국으로 돌아간 상태”라고 말했다. 인도 뉴델리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정보기술(IT) 업체 인포시스의 한 종업원은 “도쿄 등 일본에 근무하는 인도인 종업원 250명과 그 가족들이 오늘까지 전원 일본에서 철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주일 중국대사관도 도호쿠(東北) 지역 4개 현에 사는 3만 명의 중국인 중 귀국을 희망하는 자국민을 위해 매일 수십 대의 버스를 보내 국제선이 있는 나리타와 니가타(新潟)로 옮기고 있다. 중국대사관 관계자는 “비용은 나중 문제고, 일단 불안에 떠는 중국 국민을 구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태국과 인도네시아도 센다이(仙臺) 등 도호쿠 지역에 거주하는 자국민의 철수를 위해 버스 등 교통편을 운행하고 있다.

 주일 오스트리아 대사관은 외국 공관 중에선 처음으로 방사능 누출 피해 우려가 없는 오사카(大阪)로 임시 이전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