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보다 1억 내린 매물 수두룩해도 찾는 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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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16일 오후 인천 송도국제도시 국제업무단지. 입주가 한창인 A아파트 인근의 중개업소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손님이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송도동의 김대흥 공인중개사는 “송도에 대형 아파트가 특히 많지만 분양가보다 싸게 나와도 찾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이 단지는 2007년 분양 당시 평균 36대 1로 청약을 마감했고 한때 분양가에 1억원 가까운 웃돈이 붙었다. 그러나 지금은 분양가보다 1억원 내린 매물도 수두룩하다. 올 1월 입주한 인근 B아파트 단지도 입주율이 40% 미만이다. 투자 목적으로 구입한 계약자들이 손해를 보더라도 팔기 위해 집을 비워뒀기 때문이다.

 같은 날 오후 경기 용인시 C아파트 견본주택. 견본주택 3층의 절반가량이 칸막이로 둘러져 있고 그 안에는 100여 명의 영업사원들이 좁은 책상에 앉아 계속 통화를 하고 있다. 이 아파트 분양소장은 “이른바 벌떼분양(수십~수백 명의 영업사원이 계약 건수당 수당을 받고 미분양 판매영업을 하는 것) 영업맨들”이라며 “중소형은 모두 팔렸지만 대형은 손님이 전혀 없어 이달 초부터 이런 영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중대형 아파트(전용 85㎡ 초과) 기피 현상이 심화되면서 투자한 사람들이 애를 먹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심해진 전세난으로 중소형은 미분양이 속속 팔리고 있으나 중대형은 여전히 외면받고 있다. 실제로 인천 송도의 경우 중소형은 가구별로 3000만~5000만원의 웃돈이 붙은 아파트도 많다. 국토해양부 조사에 따르면 1월 말 현재 수도권 미분양 가운데 전용 60㎡ 이하 소형은 1580가구이나 전용 85㎡ 초과는 2만24가구나 됐다.

 상황이 이렇자 건설사들은 살을 깎는 자구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금호건설은 용인 동백지구의 대형 타운하우스를 분양가보다 35% 가격을 낮춰 팔고 있다. 부영은 남양주 도농동의 대형 미분양분을 아예 전세 물건으로 돌렸다. 분양가가 8억5000만원인 아파트를 전셋값 2억6000만원에 내놓은 것이다.

 중대형이 외면받는 것은 건설업체들의 판단착오와 집값 안정을 내건 부동산 정책 때문이다. 단국대 부동산학과 김호철 교수는 “분양가 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2007년 말~2008년 초 업체들이 수도권에 쏟아낸 중대형 물량이 악성으로 남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서울·수도권에 분양된 7만여 가구의 아파트 중 70%가량이 중대형이었다.

 큰 아파트 공급이 지나치게 많은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수요 억제책은 직격탄이 됐다. 신한은행 김상훈 부동산전략팀장은 “정부가 2009년 총부채상환비율(DTI)이란 규제를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하고 보금자리주택 사전예약에 나서자 중대형 아파트 수요가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올 상반기까지는 수요가 살아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최근 경기도 광명시에서 청약을 받은 B아파트의 경우 59㎡형은 8대 1의 경쟁률로 순위 내에서 마감했지만 113가구를 모집한 141㎡형은 한 명도 신청하지 않았다.

 그러나 올 하반기에는 중대형 아파트 적체현상도 슬슬 풀릴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많다. 현대건설 마케팅팀 정흥민 부장은 “지난해부터 건설업체들이 신규 분양을 크게 줄이면서 특히 중대형을 기피했다”며 “따라서 올 하반기부터는 중대형 아파트도 수급이 조절되고 매수 심리도 회복될 것”으로 내다봤다.

함종선·최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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