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찬성·반대 어느 쪽이든 ‘왜’라는 물음에 분명히 답할 수 있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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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의’가 화두다. 지난해 서점가에서 돌풍을 일으킨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는 우리 사회에 ‘정의’에 대한 관심을 촉발했다. EBS에서 방영한 ‘하버드 특강-정의’도 폭발적인 인기였다. 하지만 책을 읽고 강연을 들어도 “여전히 정의가 뭔지 모르겠다”며 아리송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 1977년 우리나라에 존 롤스의 『정의론』을 처음 소개한 서울대 황경식 교수(철학과)를 서원준·김연우 학생(서울 명덕외고 3)이 만나 정의에 대해 물었다.

서원준·김연우 학생(왼쪽부터)이 서울대 철학과 황경식 교수를 만나 ‘정의’를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김진원 기자]

▶김연우=책을 보고 강연을 들어도 ‘이것이 정의다’라고 와 닿는 게 없어요. 정의란 정말 어떤 건가요.

▶황경식 교수=철학은 정답이 없는 학문이야.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 가지각색이듯 정의도 각 사람의 입장과 환경에 따라 달라지거든. 막스가 생각한 정의가 다르고, 동·서양 사람이 생각하는 정의가 다 달라. 종교는 ‘이 길로 가라’며 하나의 진리를 설파하지만 철학은 ‘네가 어떤 길로 가든 치열한 성찰을 통해 선택한 길을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가르치지. 일례로 임신중절 수술에 대해서도 찬반이 갈리잖아. 철학은 찬성과 반대 중 뭐가 정의인지 답을 주진 않아. 대신 찬성과 반대를 택한 사람에게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 어느 쪽을 택하든 정당한 근거에 의거하고 있다면 그게 그 사람의 정의가 되는 거야.

▶김=저를 포함해 많은 학생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힘들어 해요. 철학적 사고 방식을 연마하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황 교수=독서가 기본이야. 같은 책을 여러 친구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는 게 핵심이지. 토론 과정을 거치면 서로 놓친 것들을 채워줄 수있거든. 그 내용을 논술문이나 감상문 형태로 정리해두면 합리적으로 따지고 드는 논변 능력까지 기르게 돼. 사회가 가르쳐줘야 하는 몫도 있어. 미국 철학자 존 롤스(1921~2002)는 ‘정의롭게 살면 행복해지고 이익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해줘야 정의로운 사회가 형성된다’고 말했지. 만약에 연우 학생이 정의를 찾기 위해 철학을 배우고 독서도 열심히 했다고 하자. 그런데 현실 사회에서 부정의한 사람이 성공하고 정의로운 사람은 손해만 본다면 어떻겠어? 그런 사회에서는 철학과 정의가 꽃피기 힘들어. 젊은이들에게 정의로운 삶이 값지다는 사실을 실제로 보여줘야 ‘어떻게 하면 정의롭게 살 수 있을지’ 더욱 치열하게 철학적 고민으로 파고들겠지.

▶서원준=교수님은 유학 시절 존 롤스의 제자였다고 들었습니다. 롤스의 ‘절차적 정의’를 교과서에서 접했을 때 ‘어떻게 이런 것까지 생각했을까’ 하는 놀라움과 함께 ‘현실에 적용 가능한지’ 의구심도 생겼어요.

▶황 교수=79년에 하버드대에서 포스트닥터(박사학위 후의 연구원) 과정을 롤스 교수 지도로 마쳤어. 당시 70대 중반이셨는데 참 겸손하고 소박한 할아버지 같았지. 롤스는 결과만을 기준으로 ‘정의’와 ‘부정의’를 구분하던 이전 학자들과 달랐어. 어떤 절차와 과정을 거쳐 이 결과에 이르렀는지에 주목했어. 그래서 그를 절차주의자라고 불러. 오늘날 많은 학자들이 롤스의 입장을 따르고 있어. 절차에 주목하다 보니 분배에도 더 적극적이었지. ‘최소 수혜자 최우선 고려’ 원칙도 마찬가지야. 장애인이나 극빈층처럼 선천적·후천적으로 혜택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배려하자는 입장이었어. 그의 대표적인 이론인 ‘자유주의적 평등주의’도 쉽게 말하면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소외된 사람을 위해 많은 일을 하라는 거잖아. 그래서 미국 사회에서는 롤스가 많이 배척을 당했어. 그의 이론에 따르면 가진 사람들이 많이 양보해야 하는데, 아무리 그게 옳다 해도 행동하기는 내키지 않거든. 그래서 철학의 위대함을 따질 때 현실성은 그다지 중요한 잣대가 아니야. 사람들은 대개 정의감보다는 이기심에 의해 행동하니까. 철학은 실제로 현실에서 통용될 수 있느냐를 따지기보다 ‘그게 옳다’라고 수긍이 되면 가치가 있는 거야.

▶서=책도 많이 읽고 고민도 하고 싶은데 입시에 쫓기다 보니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도 철학적인 사람이 되는 방법이 없을까요?

▶황 교수=입시로 인해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는 건 정말 안타까워. 스스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철학적 사유를 지속하는 게 중요해. 독서도 다이제스트판부터 읽기 시작하면 돼. 예컨대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 같은 책은 제대로 읽으려면 정말 어려워. 이해하기 벅차면 읽고 나서 감흥이 남지도 않을 거야. 잘 정리된 다이제스트판부터 꾸준히 읽으면서 호기심 거리를 찾아두는 노력만으로도 충분해. 신문을 읽는 것도 좋아. 특히 사설 같은 글은 논변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가장 모범적인 형태의 글이지. 현실 문제를 다루고 있으니 고전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거야.

정리=박형수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사회 제도는 개인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잘못된 사회 제도는 수많은 개인의 삶을 불행으로 이끌기도 한다. 그래서 사회 제도는 반드시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 그 도덕성이 바로 정의다. 제도 자체뿐 아니라 운영도 정의로워야 제대로 구현될 수 있다. 이 단원은 사회 제도가 갖춰야 할 정의란 무엇인지, 정의로운 제도 운영이 어떤 것인지 다루고 있다. 고등학교 도덕(비상교육) Ⅱ. 사회 정의와 윤리 1. 사회 제도와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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