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회장이 직접 현장 어려움 청취 … 협력사 대표와 상생 주제 ‘끝장 토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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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지난해 8월 인천 남동구에 있는 협력업체 보성테크놀로지를 방문해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번 방문은 대기업 회장이 협력업체의 현장을 찾은 첫 사례로 꼽힌다.

“엔화 차입을 했는데 환율이 올라 자금난을 겪고 있습니다.”(김흥곤 제일정밀㈜ 대표이사)

“그렇다면 (원화로 따진) 차입금 증가분에 대해 무이자·무보증 융자를 지원하겠습니다.”(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 회장이 지난해 8월 인천시 남동구 고잔동 남동공단의 협력업체 대표와 직원들을 만났을 때 나눈 대화 내용이다. 대기업 회장이 협력업체 공장을 직접 찾아 ‘상생 경영’을 보여준 첫 사례로 꼽힌다. 제일정밀이 엔화 대출을 했다가 환율 때문에 갚아야할 돈과 이자가 늘어 곤란을 겪는다고 호소하자 환율에 따른 손실이 없도록 한화그룹이 자금 지원을 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김 회장은 이날 왁스코팅지와 종이상자를 납품하는 보성테크놀로지도 방문했다. 보성테크놀로지 측이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납품가격에 반영해 달라”고 요청하자 김 회장은 “펄프 가격 추이를 보며 납품가격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그는 “한화의 협력업체는 단순히 하도급업체가 아니라 그룹의 가족이고 동반자”라며 “빨리 가려면 혼자 가도 되지만,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화는 동반성장을 위해 협력업체와의 ‘소통’에 주력하고 있다. 2009년에 만든 ‘한화-협력회사 상생협의회’가 대표적이다. 상생협의회 정기회의는 1년에 한 번 열린다. 한화 그룹의 대표이사가 참석한 가운데 77개 협력회사 대표들이 몽땅 한자리에 모인다. 이 자리에서 상생을 주제로 ‘끝장 토론’이 펼쳐진다. 그룹과 협력업체와의 공동 기술 개발, 신규사업 공동 참여, 원가 절감 아이디어 등의 이야기가 오고 간다. 건의사항을 듣는 시간도 빠지지 않는다.

협의회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실제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경우도 많다. ‘구매 조건부 협력사업’이라는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자본금이 부족한 협력업체가 신제품을 개발할 수 있게 그룹이 구매를 전제로 신제품 개발 계약을 맺는 것이다. 한화는 지난해 250여개의 협력업체에 150여개의 신제품 개발 과제를 줬다. 그렇게 개발된 200억원 상당의 신제품을 구매했다. 또 300억원 규모의 상생펀드를 조성해 협력업체들이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네트워크론’도 있다. 협력업체가 물품을 납품하고 있다는 것을 그룹이 증명해 은행권에서 돈을 쉽게 대출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협력업체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원자재 공동구매, 협력업체 특허출원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고 있다.

그룹 계열사들도 다양한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한화건설은 2002년부터 10년째 우수 협력사 간담회를 열고 있다. 간담회에서 건의된 내용은 사내에 꾸려진 ‘동반성장 추진위원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논의된다. 우수 협력사로 선정되면 1년간의 계약이행보증 면제 등 다양한 인센티브도 준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한화건설은 2009년 건설협력증진 대상에서 국토해양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10월부터 격월 셋째 수요일을 ‘동반성장 데이’로 정해 그룹의 임원, 실무 담당자들이 협력업체가 일하는 현장을 찾고 있다.

한화케미칼은 ‘베스트파트너(BPS)’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한화케미칼 내 전문가들이 협력업체를 방문해 회계·정비·경영진단 분야 컨설팅을 무상으로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협력사들의 고충도 함께 챙겨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대한생명은 2008년부터 중소기업 상생협력 프로젝트인 ‘우행터(우리들의 행복한 일터 만들기)’를 운영하고 있다. 한화 그룹의 협력업체 뿐 아니라 관공서, 각종 기업체 등이 요청하면 대한생명의 고객만족(CS) 전문강사가 찾아가 무상으로 서비스 교육을 제공한다. 서비스마인드를 높이는 방법부터 사업 매너, 이미지 메이킹, 상담기법 등이 주 내용이다. 직원들의 스트레스를 줄여 즐거운 일터가 될 수 있도록 ‘웃음 노하우’도 전수한다. 대한생명 관계자는 “지난해까지 300개의 고객사에서 3만 명이 교육을 수료했고, 교육을 받은 기업체로부터 감사 편지가 올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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