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을 위한 수능 클리닉 ② 수능을 ‘물’로 보지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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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력이 필요한 수능 문제가 상위권을 가른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달 16일 발표한 ‘수능-EBS 연계 강화방안’을 통해 수능과 EBS교재의 체감 연계율을 강화하기로 했다. 지난해와 동일하게 EBS 교재와의 연계율을 70% 수준으로 유지하되 문제를 심하게 변형하지 않는 것이 주요 골자다. 또 수능 영역별 만점자 비율이 1%로 유지되도록 난이도를 낮춰 출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수능 영역별 만점자 비율은 언어 0.06%, 수리 가형 0.02%, 외국어 0.21% 등이었다. 지난해보다 많게는 50배, 적게는 5배 이상 만점자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명문대 진학의 핵심 변별 요소인 수능이 쉽게 출제된다면 대입 전형엔 어떤 변화가 있을까. 교과부의 바람대로 ‘쉬운 수능’은 가능할까. EBS교재만 공부하면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지난해 치러진 2011학년도 수능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교과부는 지난해 초 사교육비 절감 정책의 일환으로 EBS 수능관련 교재들을 수능과 70% 안팎으로 연계하겠다고 발표했다. EBS 교재 활용도를 높여 수능에서 기인한 사교육 수요를 줄여볼 심산이었다. 수험생들은 ‘수능과 70% 연계’에 대해선 반신반의하면서도 적지 않은 수의 EBS 교재들을 구입해 공부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2011학년도 수능출제위원장이었던 안태인 서울대 교수는 지난해 수능 당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수능) 변별력이 다소 없어지더라도 (EBS와의) 연계율을 지켜서 정부 시책에 부응하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험생들의 체감 난이도와 채점 결과는 달랐다. 언·수·외·탐 영역별 표준점수 최고점이 2010학년도 수능보다 각각 6점, 11점, 5점, 2점 높아졌다. 예상과 달리 수능이 어려워진 것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펴낸 『수능 출제 매뉴얼』에 나와 있다. 『수능출제 매뉴얼』을 보면 수능이 어떻게 출제되는가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나와 있다. 출제지침 몇 가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수능은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토대로 출제한 시험이다. 둘째, 수능은 기본적으로 ‘이원분류표’에 근거해 출제한다. 이원분류표란 교육과정 편성과 평가의 기본이 되는 교육목표 분류표다. 여기서 ‘이원’이란 보통 내용영역과 행동영역을 가리킨다.

문제는 수능이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명시돼 있는 행동영역을 ‘제대로’ 평가하려는 데 있다. 언어(국어) 영역의 행동영역을 살펴보면 사실적 사고, 추론적 사고, 비판적 사고, 창의적 사고 등 언어 사고력이 포함돼 있다. 수리(수학) 영역의 행동영역을 살펴보면 계산 능력, 이해 능력, 추론 능력, 문제해결 능력 등 수학 사고력이 포함돼 있다.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이런 언어사고력이나 수학 사고력을 중·고교 시절에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평가하려는 수능을 어려워하는 것이다. 중·고교 시절에 계산 능력이나 이해능력은 알게 모르게 배웠지만, 추론 능력이나 문제해결 능력은 제대로 배우지 못해 수능 문제가 어렵고 낯선 것이다.

올해 수능은 교과부의 공언대로 EBS교재와 70% 수준에서 노골적인 연계가 이뤄질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30%는? ‘수능’이란 시험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쉬운 수능’이란 없다. 수능은 중학생 때부터 행동영역까지 제대로 공부한 학생들에게만 좀 더 쉬워 보일 뿐이다.

<조동영 c&i중등와이즈만 입시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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