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리듬 회복엔 ‘라 트라비아타’가 묘약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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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호 18면

수련의 시절부터 ‘오페라에 미친 의사’로 불린 사람이 있다. 오페라 관람을 위해 15년간 20회 이상 이탈리아를 다녀왔다. 지금까지 관람한 오페라 공연만 1000회가 넘는다. 오페라에 대한 책을 무려 8권이나 집필했다. 그중 황홀한 여행(2008)은 재판 4쇄를 돌파했다. 현재 그는 오페라 평론가 겸 클래식 레코드전문점 ‘풍월당’(서울 신사동)의 대표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박종호(51·사진) 원장의 이야기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오페라 강의가 열리는 풍월당에서 강의를 준비하고 있는 박 원장을 만나 오페라와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박종호 원장의 ‘오페라 건강법’

-남들과 다른 삶을 사는 것 같은데.
“남들은 나를 미친 의사라 부른다. 인정한다. 돈은 많이 벌었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은 없다. 오페라에 쏟아 부은 돈을 따져보면 빌딩 한 채는 될 거다. 돈이나 빌딩에 얽매이면 인생이 고달프지 않은가. 나는 50년 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았다. 진료하는 일만큼 책을 쓰고, 오페라 강의를 하는 일을 즐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건강하다.”

-어떻게 오페라에 빠져들었나.
“수련의 시절 스트레스가 심했다. 다른 친구들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사우나도 가고 게임을 하기도 했다. 우울증으로 고생한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오페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오페라를 보면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듯 몰입하게 된다.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고 스트레스가 풀린다. 지금은 수험생이나 스트레스가 심한 직장인, CEO, 환자들에게도 오페라를 보라고 권한다. 진료가 꼭 주사나 약, 상담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음악이 건강에 어떤 도움을 주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질 수 있다. 음악은 인간의 감정·내분비계·호흡· 기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음악을 들으면 감정과 본능을 담당하는 뇌의 변연계가 자극을 받아 신경전달호르몬이 활발하게 분비된다. 우울증과 신경쇠약, 불면증 같은 정신과적 질환 치료에 효과적이다. 실제로 오페라 강의를 듣는 여성분들 중에 우울증이 개선됐다는 사람을 많이 봤다. 신체 건강도 지켜준다. 평온한 음악을 들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카테콜아민 호르몬의 수치가 떨어진다. 편두통·고혈압·뇌졸중·관상동맥 등의 위험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정신과의사의 진료만큼 효과를 보기도 한다.”

-음악 중에서도 왜 오페라인가.
“오페라는 음악의 다양한 장르 중에서도 건강에 가장 좋은 영향을 미친다. 오페라의 마지막 대목은 대부분 비극으로 끝난다. 주인공은 비참한 세상에서 고뇌하다가 결국 죽거나 패배한다. 나보다 훌륭한 주인공이 비극을 맞이하는 것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결국 ‘사람 사는 게 다 똑같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정신과 치료도 이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페라가 건강에 좋은 이유다. 또 오페라를 볼 때는 눈과 귀를 열어 집중한다. 일상의 고민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가 있다.”

-어떤 오페라가 건강에 좋은가.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는 점점 크고 강하게 연주하는 크레셴도와 점점 작고 여리게 연주하는 데크레셴도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크레셴도는 인체 각성도를 높이고, 피하 혈관을 좁게 한다. 또 혈압·심박수·호흡을 높인다. 반대로 데크레셴도는 신체를 이완시키고, 심박수와 혈압을 낮춘다. 크레셴도와 데크레셴도가 반복되면 신체 리듬이 활성화된다. 베르디의 ‘리골레토’, 벨리니의 ‘청교도’, 도니체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도 추천한다.

-건강을 위해 따로 오페라를 보기가 쉽지 않다.
“처음부터 오페라 관람을 권하지는 않는다. 돈과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서 휴식을 취할 때, 길을 걸을 때, 밥을 먹을 때, 공부하거나 잠을 잘 때 오페라 음악을 틀어 놓는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DVD로 나온 오페라 영상을 봐도 된다.”

-음악인들과의 교류도 많을 것 같다.
“풍월당은 2만 장 이상의 희귀음반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최대의 클래식 레코드점이다. 오페라를 관람할 수 있는 100석 규모의 오페라 강의실도 구비하고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찾아오는 곳이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씨와 세계 3대 바리톤으로 꼽히는 러시아의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 세계적인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 등 대가들의 사인회가 열리기도 했다.”

-오페라는 특히 어떤 사람들에게 좋나.
“오페라를 보여줬을 때 보통 남성보다 여성의 불안 수준이 더 낮아지더라. 스트레스로 심신이 피로한 직장인이나 우울증이 있는 주부들이 들으면 청량제 역할을 할 수 있다.”

-현대인은 쫓기듯 바쁘게 살고 있다. 시간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오페라를 즐길 수 있나.
“여가활용은 일단 시작부터 해야 한다. 시간이 없어도 해야 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에 속지 마라. 일만 하다가는 영원히 떠날 수 없다. 여행을 하고 싶으면 지금 당장 가야 한다. 일단 저지르고 나면 돌아와서 일을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질 거다. 그때부터 정신 건강이 시작된다. 그때 오페라를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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