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에게 듣는다] 랄프 네이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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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슈퍼리치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
랄프 네이더 지음
강경미 옮김, 꾸리에
544쪽, 2만7000원

미국 소비자권익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랄프 네이더(77·사진). ‘타임’지와 ‘라이프’지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인 100명’에 포함시킨 바 있는 그는 인생의 대부분을 시민운동으로 보냈다. 아래로부터의 사회 변화를 평생 모색해온 셈인데, 70대 중반을 넘겨 펴낸 신간에서 색다른 시각을 선보였다. 2009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에서 저자는 슈퍼리치 즉 억만장자들이 미국 사회의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데 나선다는 구상을 선보였다.

 이 책은 ‘가상 소설’이다. 주인공들은 실존 인물이지만 그들이 전개해가는 이야기는 상상의 산물이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렌 버핏과 조지 소로스, CNN방송 창업자 테드 터너, 빌 게이츠의 부친이자 변호사인 윌리엄 게이츠 시니어, 프라이스클럽 창시자 솔 프라이스 등 내로라하는 거부(巨富) 17명이 등장한다. 17명은 모두 실제 삶에서 각종 기부와 자선사업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책은 실제와 상상이 교차하는 구도로 짜여졌다. 상상 속에서 저자의 바램을 읽을 수 있다. 이메일로 저자의 얘기를 들어봤다.

-17명의 슈퍼리치를 선정한 기준은.

“첫 번째 기준은 깨어있는 의식을 지닌,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예컨대 테드 터너는 환경 운동의 챔피언이고, 빌 게이츠 시니어는 돈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법률 지원을 하고 있다. 두 번째는 70~90대의 연령으로 후세에 뭔가 남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당신은 슈퍼리치를 비판해 유명해졌다. 이 책에선 슈퍼리치가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구세주로 등장한다. 입장이 바뀌었나.

 “변한 것은 아니다. 나는 소수의 슈퍼리치들이 훌륭한 가치와 이상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빈곤과 낭비가 존재하고 극소수에게 많은 권력이 집중된 미국에 무엇이 필요한지 그들은 알고 있다. 슈퍼리치들은 무수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힘과 돈을 갖고 있다.”

-슈퍼리치들이 기업을 잘 경영해 수많은 고용을 창출하는 일 자체가 사회를 위한 가장 큰 공헌 아닌가.

 “그게 내가 나이든 사람들을 고른 이유다. 대부분이 은퇴했다. 사회적으로 더 중요한 것을 부여잡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현역 CEO가 아니기 때문에 자유롭다.”

-이들을 ‘리무진 리버럴(limousine liberal·부자이면서 진보적 발언을 하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리무진 리버럴’은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다. 자신의 손으로 현실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그들은 단지 나라가 어디로 가야할지만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내 책에 나오는 슈퍼리치들은 다르다. 지역사회와 빈곤 지역에 내려간다. 어떤 사람들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겨우 17명이다. 미국에는 무수히 많은 슈퍼리치들이 있다. 나는 이런 종류의 캠페인에 관심이 있을 법한 사람을 골랐다.”

-슈퍼리치의 힘을 빌리지 않고 사회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다른 방법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물론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해결책은 자원과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역 사회에서 풀타임(전일) 운영자들 없이는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들은 보수를 받아야 한다. 그게 내가 슈퍼리치 아이디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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