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판 색계’ 미 군사기밀도 넘어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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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장성을 포섭해 주요 군사정보를 중국에 넘긴 미녀 스파이. 얼마 전 알려진 이 사건으로 미국의 핵심 군사기밀도 중국에 노출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대만 정보당국은 현역 소장인 뤄셴저(羅賢哲·나현철·51) 육군 통신전자정보처장을 간첩 혐의로 지난 1월 말 체포해 조사 중이다. 그는 2004년 미녀와 거액의 정보비를 미끼로 접근한 중국 정보당국에 포섭돼 간첩 활동을 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뤄가 넘긴 군사정보 중 핵심은 ‘보성(博勝)’ 프로그램이다. 대만 의회인 입법회의의 린위팡(林郁方·임욱방·국민당) 의원은 “뤄 소장이 보성 프로그램의 세부 정보를 넘긴 것으로 보인다”고 WSJ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보성은 미국과 연계돼 대만의 육·해·공군을 통합 지휘할 수 있는 전자정보 시스템이다. 미 록히드마틴사가 대만에 공급했다. 중국은 오랫동안 보성의 세부정보를 알기 위해 공작을 펴 왔다. 2008년엔 미 국방부 관리인 그레그 버거슨이 귀화한 대만계 미국인 궈타이셴에게 보성 정보를 제공했다가 발각된 바 있다. 궈타이셴은 이 정보를 광저우에서 한 중국군 장교에게 넘겼다고 자백했다. 글로벌 군사 전문지 ‘디펜스 뉴스’의 웬델 미닉 아시아 지국장은 “중국은 대만 공격에 앞서 대만 통신망을 교란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에 보성 정보 입수에 필사적”이라고 분석했다.

 WSJ는 “이 사건으로 인해 첨단 무기 시스템과 관련 기술의 중국 유출 위험을 무릅쓰고 미국이 대만에 계속 무기를 판매할지에 대해 대만 내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대만은 국방력의 상당 부분을 미국이 수출하는 무기와 물자에 의존하고 있다. 충핀린 전 대만 국방부 부장관은 “이번 사건으로 이미 여러 방면에서 미국의 대(對)대만 무기 수출이 영향 받고 있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는 “대만관계법에 따르면 ‘미국은 대만이 충분한 자위력을 유지하도록 한다’고 돼 있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군사 전문가들은 “중국에 대한 대만의 개방정책이 중국 스파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대만의 국민당 정권이 경제 부흥을 위해 무역·여행 등 중국 본토와의 교류를 확대하면서 간첩 활동이 더욱 쉬워졌다는 것이다. 대만은 이 사건 뒤 해외 여행에서 돌아오는 모든 장교들에게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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