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설(世說)

일제하 국내 강제동원도 보상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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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한상도
건국대 교수·사학과

올해 80세 된 조씨 할머니는 열두 살 어린 시절 일본 제국주의에 강제동원됐다. 서울 영등포에 있는 방직공장으로 끌려가 4년간 군복을 만들었다.

엄중한 감시 아래 하루 2교대의 중노동을 했는데, 어린 소녀들이 1000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할머니는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지 못한다. 한반도 내에서 강제동원됐던 경우는 위로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국내 강제동원자를 배제한 논리는 1965년 한일협정 체결 당시 일본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의 규모를 축소함으로써 자신들의 배상책임을 줄이려는 의도 아래 한반도 내에서의 동원을 제외해 버린 사실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이 논리가 강제병합 101주년을 맞는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일제침략기 한반도 내 강제동원 노역지는 7000곳이 넘었다.

 지난 2월 27일 헌법재판소는 국내 강제동원을 보상하지 않는 현 제도에 6대 3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국가의 재정부담 능력에 따라 결정돼야 하고, 정신적 고통으로 볼 때 고통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는 국외 강제동원 피해자를 우선적으로 처우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그러면 국내 강제동원에 대해서는 누가 보상해 주어야 하는가. 어차피 국가가 할 일이다. 위로금 지급이 불가능한 이유 중 하나로 정부의 재정부담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데, 우리 정부의 재정상황이 그토록 열악하단 말인가.

 다행히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3명은 반대 의견에서 “국내 강제동원 희생자에 대해서도 지원 법률을 제정할 의무가 인정된다”고 지적하면서 “정부 수립 후 60여 년이 지났음에도 아무런 입법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입법재량을 넘어 헌법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국외 강제동원 피해자를 우선적으로 조사·지원한 현재의 법률을 인정했지만 동시에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조사와 지원을 더 이상 방기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볼 수 있다.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조사·지원을 골자로 한 법안들이 이미 국회에 제출돼 있다.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해방 후 60여 년이 넘도록 이들을 방치한 정부와 국회는 팔순 노인들이 회환 속에 세상을 떠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한상도 건국대 교수·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