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퍼스트 무버’가 필요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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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두환
KT 사장·종합기술원장

TED는 세계 지식인들의 아이디어 축제다. 지난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올해 행사장에서 만난 오스트리아의 베스트셀러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오스트리아에선 나도 꽤 잘난 사람에 속한다. 하지만 TED에 오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도토리 키 재기를 하다가 밤을 만난 느낌이다. 어떻게 이렇게 뛰어난 사람이 많은지, 어떻게 그들은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지, TED에선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교만을 버리게 된다.” 아마 이 작가의 말이 TED에 참가한 청중 대부분의 느낌을 대변해 주는 말이 아닐까 싶다.

 TED는 한 발 앞서 남다른 것을 생각하고 미래를 준비하려는 사람들의 행사다. 초기에는 새로운 기술과 인터페이스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제는 더 나은 사회와 미래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TED에서 미래학이 논의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미래가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이를 위해 각자가 행동에 옮기고 있는 것들을 내보일 뿐이다. 기술이 얘기되고, 새로운 기술로 펼쳐질 미래가 얘기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TED에서 깨닫게 되는 또 다른 생각은 ‘창의성에 대한 네트워크의 힘’이다. 창의성은 그간 개인의 산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TED에 오면 개인의 창의성마저 네트워크의 힘으로 한 차원 높아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같은 문제를 다른 사람들이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자신이 그 문제를 바라보는 수준 역시 달라지게 된다. 또 그들과의 네트워킹을 통해 한 차원 높은 창의성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한국은 그간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였다. 하지만 이제는 퍼스트 무버 (first mover)로 변신해야만 산업적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상황을 맞고 있다. 패스트 팔로어일 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결정이 쉬웠다. ‘무엇을 따라 해야 하나’는 이미 알고 있었고 그것을 ‘얼마나 잘 따라 하는가’가 문제였다. 하지만 퍼스트 무버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결정해야 한다.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퍼스트 무버로 성공하기 위해선 미래를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미래를 꿈꿔 보아야 한다. 미래를 꿈꿔 보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겠다고 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미래를 고객과 사회, 기술의 관점에서 꿈꿔보고, 그것에 먼저 발을 내디뎌 보고,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가능성이 보일 때는 과감히 앞서 나가야 한다. 이것이 TED가 지향하는 가치다. 우리에게도 TED같은 행사가 요구된다. 퍼스트 무버의 입장에서 각계 지도층과 젊은이들이 함께 미래를 생각하고, 도전해 보고, 펼쳐 보이는 마당이 필요하다.

 기업이 앞장설 필요가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라고 하면 흔히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 사회나 기술, 산업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짚는 것도 기업의 중요한 사회적 책임 중 하나다.

*TED=기술(Technology)·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디자인(Design)의 머리글자.

최두환 KT 사장·종합기술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