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화내지 않는 허영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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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본선 8강전>
○·왕레이 6단 ●·허영호 8단

제5보(45~51)=흑▲로 하변 대마가 몰리고 있는데도 아예 백△로 쳐들어간 왕레이 6단의 모습은 대단히 호전적이다. 배짱도 두둑하지만 사활 등 잔수 부분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게 분명하다. 허영호 8단은 분통이 터질 법하지만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라는 듯 차분히 판을 살핀다. 그리하여 등장한 45(참으로 침착무비의 한 수다).

 허영호의 판단은 이렇다. ‘참고도 1’ 흑1로 꽝 씌우고 싶지만 이 백은 탄력이 좋아 2, 4 정도로 잡히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참고도 2’ 흑3을 선수하고 5에 두면 어찌 되나. 그리 쉽게 살 수 있을까. 백도 살기 위해선 머리에 쥐가 나도록 수를 봐야 하는 것 아닐까.

 이 질문에 대해 박영훈 9단은 “45는 실리로 매우 큰 자리”라는 답변을 내놓는다. 동문서답 같지만 이 말을 번역(?)하면 이렇다. ‘백 대마는 탄력이 좋다. 왕레이가 대마를 손 뺀 것도 대책이 있기 때문이다. 잡으러 갔다가 살려 주면 실리만 잔뜩 손해 보게 된다. 일단 45의 큰 곳을 확보한 것은 안전한 선택이다’.

 왕레이 6단은 46으로 한 수 선수하더니 또다시 손을 빼 48로 젖혀 버린다. 이 미친 듯한(?) 칼춤에도 불구하고 허영호는 화를 내지 않는다. 49, 51로 맞장구를 쳐 준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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