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19세 미만은 절대 입장 불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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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보호연령기준을 만18세에서 만19세로 상향 조정하는 영화진흥법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다. 별 이변이 없으면 다음주 중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법에 따라 앞으로 19세 미만의 청소년의 경우 영화와 연극을 포함한 각종 공연을 관람할 수 없게 된다. 텔레비전에서는 이미, 화면 우측상단에 내보내도록 돼있는 시청등급 표시를 19세로 맞춘지 오래다. 이는 곧, 모든 면에서 열아홉살이 안되면 성인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물론 술과 담배, 유흥업소 출입도 절대 안될 소리다. 우리 청소년들을 19세가 되기 전까지 사회적인 유해환경에 노출시키지 않겠다는 정부의 강한 정책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18세든, 19세든, 청소년 보호연령기준을 통일시켰다는데 이번 법률안의 의미가 있다. 그동안 여러 분야에서 이 문제로 혼선이 빚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형평에 어긋난 부분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공연은 버젓이 관람하게 하면서 어떤 것은 못하게 하는 바람에, 청소년들로부터도 불만이 많았다. 무엇보다 정부의 행정기능에 어려움이 많았다. 청소년보호와 관련해 가장 입김이 센(?) 행정부서는 청소년보호위원회(위원장 강지원)다. 청보위는 영상물등급위원회든 방송위원회든 혹은 간행물윤리위원회든, 모든 심의기관보다 속칭 끗발이 세다. 당연히, 청보위의 관련법규에 따른 심의기준이 방송법이나 공연법, 정간법이 시행하고 있는 심의기준보다 앞선다. 상위법률인 것이다. 그런데 이 법률 기준들이 지금까지 제각각이었고, 오래전부터 청보위에서는 이를 하나로 통일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연령기준은 만 19살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19세는 상당히 애매한 나이다. 우리 아이들은 빠르면 7살, 만 나이로 6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때문에 대학교에 들어가는 나이는 우리나이로 19살, 만 18살이 된다. 새로 개정된 법률에 따르면 대학교 1학년이 되도 성인용 영화나 공연 등을 관람할 수 없다는 얘기고, 2학년, 그러니까 우리나이 20살이 돼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의 대학 1학년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양한 연령층을 포함하고 있는 가. 재수생, 3수생들을 생각하면 1학년이라 하더라도 만18세부터 만20세 이상까지 나이들이 각각인 것이다. 그렇다면 같이 학교를 다니면서도 어떤 학생은 〈거짓말〉을 봐도 무방한 나이고 어떤 학생은 그럴 수가 없다는 얘기다. 물론 이런 얘기는 〈거짓말〉이 지금과는 달리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등급을 받아 일반상영이 가능할 때 의 상황을 전제로 한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청소년보호연령층을 한살 올린다는 것도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상당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당연히 문화계에서는 반발이 거세다. 이른바 소장파 영화인들의 모임인 "영화인 회의"는 〈제1회 한국영화포럼〉을 통해 이번 법률의 본회의 통과를 적극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들이 새법률에 반발하면서 내세우는 입장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영화와 공연, 방송, 출판과 같은 각종의 문화활동을 술이나 담배 유흥업소 출입과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칫 청소년들에게 문화활동 자체를 유해한 환경이라고 생각하게끔 할 가능성이 있고 따라서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새법률은 청소년의 문화적 활동을 보장하고 지원하기 보다는 이들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통제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네가티브"한 발상에서부터 비롯된 정책이라는 것이 이들의 비판이다. 제각각의 법률 기준을 하나로 묶는다는 것도 행정편의주의적 입장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문화활동을 왜 하나의 심의기준으로 묶어야 하는가, 차별화 정책은 왜 불가능한가라고 이들은 묻고 있다. 결국 청소년보호연령의 강화는 청소년들의 문화적 주권을 침탈하는 행위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청소년들의 문화 향유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문화계 활동 전반이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들이 판단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나름대로의 고언에 대해 일각에서는 "밥그릇 챙기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연령층을 올릴 경우 그만큼 관객수가 줄어든다는 판단이 이들의 저항감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견 타당한 얘기이기도 하다. 결국 문제는, 작금에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문화갈등을 사회윤리적 관점에서 바라보느냐, 아니면 산업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데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다분히 철학적인 문제다. 원칙과 철학의 자리매김이 부족한 상태에서 서로의 관점만이 중구난방으로 제기될 때, 혼란스러운 것은 소비자들 곧 관객들이다. 아마도 청소년들은 지금, 금지하든 말든 상관없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리고 컴퓨터앞에 앉아서 해적판으로 나돌고 있는 〈거짓말〉CD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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