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토목의 꽃` 다리 기술 100% 독립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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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일기자] 바다에 놓는 다리 기술은 `토목건설의 꽃`으로 불린다. 해일과 지진에 견뎌야 하고 큰 배가 지날 수 있도록 교각 사이가 넓어야 한다. 당연히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된다. 요즘엔 미적 요소를 갖춰 관광상품의 기능까지 한다.

다리 한개를 놓는 데 보통 1조원 이상이 들어간다. 지금까지는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 건설업체들의 독무대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국내 업체들의 기술력이 세계 수준에 이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100% 기술 자립도를 이루고 해외의 해양특수교량 시장 진출에 나선 것이다. 2000년 서해대교 완공 이후 10여년만에 갖춰진 경쟁력이다.

대우건설은 최근 카타르에 침매(沈埋·바다밑 터널) 공법을 적용한 특수교량 건설을 제안했다. 거가대교에서 쌓은 기술력이라면 해외에서도 충분히 먹힐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림산업은 베트남 밤콩교량과 까우란교량 수주에 뛰어 들었다.

그동안 외국 업체 손 빌려 작업

대림산업 윤태섭 상무는 “아직 장대 특수교량 수출이 초기단계지만 기술에 대한 확신이 섰다”며 “시장이 커지고 있고 총 공사비가 1조원대에 달해 장대 특수교량 분야는 머지않아 국내 업체들의 블루오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양특수교량은 컨테이너선 등 대형 선박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러면 당연히 높아야 하고, 교각(다리를 받치는 기둥)이 없거나 교각이 있더라도 사이가 넓어야 한다. 게다가 파도와 바람이 강한 바다 위에서 공사를 해야 하므로 고도의 기술력과 풍부한 경험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서 해양특수교량 분야는 토목건설의 ‘꽃’으로 불리기도 한다. 명지대 토목환경공학과 박영석 교수는 “해상특수교량은 초대형 선박이 동시에 지나다닐 수 있어야 하므로 주경간장(주탑과 주탑 사이의 거리)을 늘리는 게 핵심 기술”이라며 “주경간장 길이가 시공 업체의 기술력을 나타내는 척도”라고 말했다.

국내에는 이런 기술과 시공 경험을 갖춘 업체가 없어 그동안 비싼 돈을 주고 선진 업체들의 장비와 인력을 빌려다 썼다. 가령 현수교의 경우 기본 토목공사는 국내 업체가 하고, 핵심 공정인 케이블 설치는 일본의 인력과 장비를 쓰는 식이었다.

국내 최초의 현수교인 남해대교(1973년 완공)는 일본 업체가 자국에서 장비와 인력을 직접 가져다 만들었다. 영종대교(2000년)·광안대교(2003년) 등 이후 완공된 현수교는 국내 업체가 시공에 참여했지만, 시공의 핵심인 케이블 제작과 설치 공사는 일본 업체의 장비와 손을 빌려야 했다.

해양특수교량 가운데 비교적 쉬운 분야로 꼽히는 사장교도 마찬가지다. 최초의 사장교인 진도대교(1984년)는 물론 이후 들어선 크고 작은 사장교 역시 외국 업체의 손을 빌려야 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서해대교(2000년)·인천대교(2009년)·거가대교(2010년)·이순신대교(공사중) 등 규모가 큰 특수교량을 건설하면서 국내 업체들의 기술력이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선 것이다.

기술 자립도 100%

현수교인 이순신대교의 경우 주경간장이 1545m로 ^아카시대교(1991m·일본) ^시호우먼교(1650m·중국) ^그레이트벨트교(1624m·덴마크) 다음으로 길다. 외국 업체의 도움 없이 100% 국내 인력·장비만으로 만들고 있다.

핵심공정인 케이블 설치도 자체 제작한 케이블 설치 기계를 통해 직접 진행하고 있다. 대림산업 윤 상무는 “기술력은 자신있지만 직접 시공하는 것은 처음이므로 소형 이순신대교를 만들어 수차례에 걸쳐 케이블 설치 공정을 연습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주경간장이 800m로 사장교로는 세계에서 5번째로 긴 인천대교 역시 순수 국내 기술로 완공됐다. 인천대교 길이의 3분의1인 서해대교 건설에 72개월이 걸렸으나 인천대교는 52개월에 불과했다. 획기적인 공기 단축이다.

삼성건설 장일환 토목기술실장은 “상판을 육지에서 만든 뒤 교각 위에 얹는 기술(FSLM) 등을 적용해 공사기간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대우건설이 시공한 거가대교는 종류가 다른 다리가 두 개 놓인다. 바다 위를 지나는 다리(거가대교)와 바다 밑을 통과하는 다리(가덕해저터널)다. 가덕해저터널은 세계에서 가장 긴 침매터널이다. 침매터널은 육상에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대형 콘크리트구조물(함체)을 만들고, 이를 바다 밑으로 넣어 이어 붙여 만든 터널이다. 길이 180m, 높이 9.97m, 너비 26.5m의 함체 18개를 수심 50m 밑으로 넣어 건설했다.

대우건설은 이 터널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자체 개발한 장비 등으로 국제특허를 3개나 출원했다. 구임식 토목사업본부장은 “경험이 없어 기본설계는 외국업체에 맡겼지만 공사과정에서 직접 수차례 설계를 바꿨기 때문에 사실상 독자기술로 완공했다”며 “공사를 하면서 개발해 국제특허를 출원한 EPS(침매함체를 정밀하게 내려보낼 수 있는 장비)에 네덜란드나 일본 업체들의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EPS 덕분에 육상에서 제작된 터널구조함을 바다 밑에 빠뜨려 이어붙이는데 오차가 2㎝ 밖에 나지 않았다고 한다. 가덕해저터널은 특히 연약 지반에 시공돼 세계 각국의 업체들이 견학을 오고, 세계적인 토목학회지 표지를 장식하는 등 세계 토목학회가 주목하고 있다.

기술력이 세계 수준에 이르렀지만 해외 시장 진출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국 업체들이 걸림돌이다. 중국 업체들은 기술력은 우리 업체보다 떨어지지만 자국에서의 풍부한 시공경험을 바탕으로 저가 수주에 나서고 있다. 윤 상무는 “중국 업체들의 가격과 경쟁하려면 공기 단축 등 지금보다 더 나은 기술 개발로 품질을 높이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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