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 4명 데려와라” 북한 난데없는 대질 제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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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5일 남측으로 표류해온 북한 주민 31명 중 귀순자 4명을 뺀 27명의 북송이 7일에도 불발됐다.

 북한은 이날 오전 조선적십자회 명의의 전화통지문에서 “주민 전원 송환을 해결하기 위해 9일 오전 10시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에서 실무접촉을 하자”고 밝혔다. 북측은 “박용일 적십자회 중앙위원을 비롯한 3명이 남측에 귀순 의사를 밝힌 4명의 가족과 함께 나올 것”이라며 남측에도 “귀순을 희망한 4명을 데리고 나오라”고 요구했다.

 정부는 답신에서 “4명의 자유의사를 확인하는 문제를 협의할 수 있다”면서도 “장소는 판문점 평화의 집(남측 지역)에서 하자”고 수정 제의했다. 정부 당국자는 “실무접촉에 귀순자 4명을 데리고 나가는 것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유엔사 중립국감독위는 이날 북한 측에 자유의사에 따른 귀순임을 통보했다.

 북한은 오후 4시 판문점 연락관 근무 시간을 연장하자고 했지만 2시간 뒤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뒤 업무를 마쳤다. 북한은 지난 4일 ‘전원 송환’을 요구하며 판문점에 나간 27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민 북송 문제가 장기화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북한의 회담 제의가 주민 송환을 쟁점화하려는 전술로 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4명의 귀순자에 대해 “사회정치적 환경으로 보나, 가정적으로 보나 귀순할 하등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가족을 내세운 것은 “당신들이 북한으로 돌아오지 않을 경우 가족들이 수용소 수감 등 고통을 받을 수 있다”며 위협한 것이란 분석이다. 중앙대 이조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귀순자의 북한 가족까지 데리고 나오는 카드를 동원함으로써 귀순을 결정한 4명을 압박하고 판문점을 대남 비난의 선전장으로 삼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지난달 9일 군사실무회담 결렬 이후 동력을 잃은 대남 유화 공세에 힘을 더하려고 적십자회담을 제안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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