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창업 → 한국 역투자 1호 … “중국 기술 공백 찾아내 성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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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중국 기업이 해외 투자를 하려면 외환관리국·세무총국 등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외자기업이라면 더 까다롭다. 자칫 세무조사를 받을 수도 있다. 이 과정을 마다 않고 한국 투자에 나선 외자기업이 있다. 상하이에 진출한 우리나라 투자업체인 제성유압(第星油壓)이 주인공. 역(逆)투자인 셈이다.

 “외환관리국에 투자 신청을 하고, 심사받는 데만 꼬박 40일이 걸렸다. 세무소에서 조사원이 나와 3일 동안 회사 장부를 뒤지기도 했다. 단 하나의 흠도 없었다. 그 과정을 거쳐서야 한국 투자 절차가 시작됐다.”

 이 회사 이창호(49·사진) 사장은 “쉬운 길을 택할 수도 있었지만, 아무리 세금을 많이 물더라도 합법적으로 투자하고 싶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굴착기 부품 전문업체인 제성유압은 지난해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관련 기업 인수합병(M&A)을 위해 약 400만 달러를 한국에 투자했다. 중국 당국의 허가를 받은 제조업 분야 첫 역투자다.

 제성유압은 직원 110명 규모의 중소업체다. 그럼에도 지난해 6억8000만 위안(약 119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무려 119%나 늘어난 실적이다. 올 목표는 14억 위안으로 역시 100%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순익률이 얼마냐’는 물음에 그는 “달리는 호랑이에 탄 기분”이라고만 답했다.

 “철저한 현지화가 답이다. 제성유압은 중국 굴착기 업체 99개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대부분의 굴착기 업체가 우리 회사 제품을 쓴다고 보면 된다. 지난해 중국 굴착기 업체의 생산량은 약 17만5000대로 2009년보다 두 배 늘었다. 우리 회사 매출액도 당연히 그만큼 증가했다. 중국과 함께 성장하는 셈이다.”

 이 사장은 현대중공업에서 잔뼈가 굵은 굴착기 전문 엔지니어다. 지난 2002년 중국 창저우(常州)의 합작법인에서 근무하다 퇴사, 중국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공학도에게 사업은 쉽지 않았다. 사기꾼에게 말려들어 초기 투자금 4억원을 모두 날리기도 했단다. ‘역시 믿을 것은 기술뿐’이라 생각한 그는 2003년 말 직접 공장을 차렸다. “중국 산업 체계는 조밀하지 못하다. 자국 기술로는 안 되는 ‘기술 공백’이 곳곳에 뚫려 있다. 굴착기의 핵심인 유압 관련 부품도 그중 하나다. 그 공백을 메워준 것이다. 해당 분야 기술 공백이 무엇인지를 찾아낼 수 있느냐에 중국 사업의 성패가 달렸다.”

 제성유압은 관련 부품을 고객의 필요에 맞춰 시스템화해 조립 공장에 공급한다. 관련 부품 시장의 5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단다. 주문할 때 가격의 30%를 계약금으로 받고, 나머지 70%는 인도하기 직전에 받는다. 100% 현금 거래인 셈이다.

 “제성유압의 비즈니스 모델은 롯데다. 일본에서 성공한 롯데가 다시 한국에 진출했듯, 중국 사업을 키운 뒤 한국에 역진출할 생각이다. 이를 위해 굴착기 완제품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같은 회사를 중국에 만들고 싶다. 자신 있다. 그들의 기술 공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한국 투자에서 합법 절차를 고집한 것 역시 ‘롯데 만들기’의 첫 과정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국과 중국을 넘나드는 기업그룹을 만들겠다는 그의 꿈이 옹골지다.

상하이=한우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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