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하라 낙마, 오자와의 복수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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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일본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참석한 간 나오토 총리가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다. 마에하라 세이지 외상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6일 밤 전격 사임하면서 간 총리는 여야 양쪽으로부터 사임 압력을 받고 있다. [도쿄 로이터=뉴시스]

6일 밤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48) 외상이 전격 사임하면서 일본 정국이 혼미에 빠졌다.

 자민당 등 야당은 7일 국회에서 “당장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해 새로운 정권을 국민의 선택에 맡기라”고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를 압박했다. 국회 해산을 유도한 뒤 선거를 통해 정권을 되찾아 오겠다는 계산이다. <관계 기사 31면>

 아사히(朝日)신문은 “간 정권이 중대 국면에 놓였다”고 보도했다. 일 정치권에선 “야당의 공세는 물론이고 현 정권을 지탱해온 마에하라 외상 그룹마저 간 총리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며 “이달 말께 정국에 대격변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에하라 전 외상이 이끄는 계파는 의원 수 50여 명이지만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현 민주당 대표대행) 전 관방장관,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관방장관, 후쿠야마 데쓰로(福山哲郞) 관방부장관 등 현 정권의 핵심이다. 이번 사임 과정에서 마에하라 그룹은 “어차피 간 정권은 오래 못 갈 텐데 우리가 상처를 더 키울 이유가 없다”며 조기 사임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자민당 등 야당은 현 정국을 “정권 탈환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보고 있다. 야당이 다음 타깃으로 삼고 있는 건 호소카와 리쓰오(細川律夫) 후생노동상이다. 야당은 전업주부의 연금 구제와 관련한 호소카와 후생노동상의 답변이 오락가락한다는 이유로 조만간 문책결의안을 낼 방침이다. 남편이 퇴직한 뒤 연금자격 변경을 전업주부가 미처 신고하지 못했을 경우 어떻게 구제할 것인지를 두고 정부 각 부처 사이에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야당은 이 문제가 일반 국민의 관심이 큰 사안인 만큼 현 정권의 정책 혼선을 부각시키는 ‘카드’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후생노동상이 그만두는 ‘사임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경우 간 총리로서도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결정타로 ‘간 총리 문책결의안’을 참의원에서 통과시킨다는 복안이다.

 여소야대인 참의원에서 문책결의안이 통과돼도 각료나 총리가 물러나야 할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내각 지지율이 바닥을 기는 현 상황에서 문책결의안이 통과되면 간 정권에는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다. 간 총리로선 국채 발행에 필수적인 예산 관련 법안을 공명당 등 일부 야당의 협조로 이달 중 통과시키려 했지만 정국 주도권이 야당의 손에 넘어감으로써 이마저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여론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이 7일 보도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간 총리가 빨리 물러나야 한다”는 응답은 51%인 반면 “총리직을 계속 수행해야 한다”는 응답은 36%에 불과했다. 간 총리로선 야당의 공세, 여론의 악화, 여당 내 세력 이탈이라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폭로 배경은 누구?=마에하라를 사임으로 내몬 정보를 어떻게 자민당 의원이 입수했는지를 놓고도 일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마에하라가 재일 한국인으로부터 헌금을 받았다고 국회에서 폭로한 자민당의 니시다 쇼지(西田昌司) 참의원은 지역구가 마에하라와 같은 교토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히라누마 다케오(平沼赳夫) 전 경제산업상을 존경하며 따르는 우익 인사다. 한국·중국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그 때문에 니시다 의원이 보수세력이나 보수언론으로부터 관련 정보를 얻었을 것이란 얘기가 돌고 있다. 일각에선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대표가 정보망을 가동해 ‘반 오자와’의 선봉 격인 마에하라에게 복수의 일격을 날렸다는 소문도 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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