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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콘신주 철밥통 공무원노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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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경민
뉴욕 특파원

“독재자는 물러가라!”

 리비아나 바레인 거리의 절규가 아니다. 민주주의 모범국이라는 미국 한복판 위스콘신주 메디슨의 주의사당에서 매일 터져나오고 있는 구호다. 주의사당은 스콧 워커 주지사에게 맞선 공무원노조가 벌써 3주가 넘도록 점거하고 있다. 시위의 발단은 지난달 11일 워커 주지사가 내놓은 재정개혁법에서 비롯됐다. 이 법은 공무원에게 주던 건강보험·연금 혜택을 확 깎는 것은 물론, 공무원노조의 단체교섭권까지 박탈하겠다는 폭탄선언이었다. 워커는 파탄 직전의 주정부를 살리자면 극약처방이 불가피하다며 공무원노조를 정조준했다.

 위스콘신주는 미국 공무원노조의 발상지다. 미국 최대 공무원노조 AFSCME가 1932년 태동한 곳이다. 59년 미국 최초로 공무원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한 곳도 위스콘신주다. 독일계 이민자가 많아 노조에 우호적 분위기였던 데다 강력한 교사 노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후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도 위스콘신주를 따라 연방 공무원노조에 단체교섭권을 인정해 줘야 했다. 당시만 해도 민간기업에 비해 열악한 대우를 감수해야 했던 공무원은 위스콘신주 공무원노조 덕에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그런데 노조가 활개치기 시작하자 기업이 하나 둘 떠났다. 민간의 일자리가 줄어든 건 물론이다. 반면 단체교섭권으로 무장한 공무원노조의 밥그릇은 철밥통이 돼갔다. 급기야 금융위기로 실업률이 두 자릿수로 치솟자 민심이 돌아섰다. 2008년 대통령선거 당시 민주당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후보에게 몰표를 줬던 위스콘신주이지만 지난해 중간선거에선 역풍이 불었다. 공화당이 주지사는 물론이고 주 상·하원까지 싹쓸이한 것이다. 워커 주지사가 철옹성처럼 보였던 공무원노조를 상대로 감히 도박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분위기 덕분이었다.

 1370만 실업자의 울분을 등에 업은 공화당은 신바람이 났다. “공무원노조의 철밥통을 깨자”며 이를 전국적 이슈로 부각했다. 인디애나·오하이오주를 비롯해 공화당이 장악한 22개 주정부가 공무원노조를 견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참에 아예 전국적으로 노조를 무력화시키자는 심산이다. 한데 노조는 민주당의 표밭이자 돈줄이다. 오바마도 2008년 대선 때 노조 덕을 톡톡히 봤다. 위스콘신주 공무원노조가 무너지면 다른 주 노조도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내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오바마로선 표와 돈줄을 다 잃는 악재다.

 위스콘신주 시위 드라마가 어떤 결말을 맺느냐에 미국 정가는 물론 유권자의 시선이 쏠린 건 이 때문이다. 민심의 풍향계는 아직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공무원노조의 철밥통을 손보자는 데는 공감하는 여론이 강하다. 그러나 노조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데는 거부감도 만만치 않다. 대기업과 부자의 로비에 맞설 서민의 방패는 노조밖에 없지 않으냐는 동정론도 일고 있다. 이 드라마가 어떻게 결말이 나든 이번엔 공무원노조의 철밥통만은 온전치 못할 것 같다.

정경민 뉴욕 특파원